굼부리 속 작은 호수, 제주 유일의 고려 석탑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원당봉]

제주를 표현하는 말 중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게 있다. 절이 오백 개나 된다는 것은 과장이겠으나 오백 개의 당은 충분히 근거를 가진다. 제주도가 2009년에 실시한 '제주신당조사'에 따르면 제주도의 232개 마을마다 신당이 있고, 많은 곳엔 7~8개, 최소 한두 개 이상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제주가 무속신앙에 뿌리를 둔 삶을 영위해 온 땅임을 말해 준다.
제주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신화가 가장 뿌리 깊게 스며든 땅이다. 기댈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던 힘없는 이들이 나무 하나 돌 하나에도 신성을 느껴 숭배했고, 세상 살아갈 힘과 위안을 얻고자 하던 간절한 마음이 제주를 1만 8천 신들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제주 사람들은 곳곳에 흩어진 오름마다 신이 깃들어 산다고 여겨 그곳에 당집을 짓고 굿을 하러 다녔다.
오름마다 있던 당이 사라진 것은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의 업적이다. 유교를 신봉하던 그는 부임 후 섬을 순시하고는 제주 사람들이 성실하게 농사를 짓고 살기보다 매일 굿만 한다고 판단해 제주 전역의 129개 신당을 불태웠다. 그렇게 제주 토착 신앙의 대상이던 오름의 신당이 파괴되어 구좌읍 송당리, 조천읍 와산리, 안덕면 동광리에 있는 '당오름' 셋과 한경면 고산리의 '당산봉', 조천읍 들머리의 '원당봉' 등에서만 당시의 흔적이 확인된다.
제주시와 조천읍을 가르며 바닷가에 우뚝 솟은 오름이 원당봉이다. 제주 동쪽 마을을 이으며 서귀포까지 가는 일주동로와 조천과 애월을 잇는 애조로가 만나는 지점에 남북으로 길게 누운 이 오름은 남쪽에선 반원형의 산체로 보인다. 그러나 동쪽이나 서쪽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북쪽 바다를 향해 3단으로 너울지며 낮아진다. 공중에서 보면 아예 복잡하다. 크고 작은 봉우리 일곱 개가 포도송이처럼 붙은 형국인 삼첩칠봉三疊七峯이다. 이 일곱을 통칭해 원당봉이라 한다.
원당봉은 굼부리 안에 화구호를 품은 귀한 오름이다. 그런데 굼부리에 들어선 문강사라는 천태종 사찰이 화구호 둘레를 따라 돌을 쌓고 연을 심는 등 정원 연못으로 가꿔 오름의 화구호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절이 들어서면서 굼부리 안, 즉 문강사 마당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제주올레 18코스는 원당봉을 앞에 두고 불탑사로 방향이 꺾인다. 원당봉 동쪽 굼부리 능선은 가파른 경사를 가졌다.
원당봉은 조선시대 북쪽 봉우리에 있던 봉수대 때문에 '망오름'이라고도 부른다. 또 일곱 봉우리로 인해 '원당칠봉'이란 이름도 얻었다. 굼부리를 품은 주봉 외 여섯 봉우리는 앞오름, 망오름, 펜안오름, 도산오름, 동부나기, 서부나기라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원당봉과 원당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후사가 없던 원의 황실에 공녀로 끌려간 기씨가 황제의 총애를 입어 제2황후가 되었다.
기황후는 황자를 낳는 일에 정성을 쏟던 차에 북두성의 명맥이 비치는 동쪽 바닷가 삼첩칠봉을 찾아 기도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한 도사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원의 영향력이 미치는 각처로 풍수사를 보내 찾게 한 끝에 발견한 곳이 이 오름이었다. 기황후는 즉시 이곳에 절과 탑을 세우고는 사자를 보내 치성을 드린 끝에 황자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이곳은 아들을 원하는 이들의 기도처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이 들어서며 절은 헐리고 탑은 묻혀버렸다.
절이 다시 세워진 것은 1929년의 일이다. 관음사를 창건한 여승 봉노관이 이 터를 찾아내서 불탑사를 일으켰다. 불탑사 경내에는 땅에 묻혔던 석탑을 파내어 복원한 5층석탑이 우뚝하다. 제주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흔히 봐 온 화강암 석탑이 아닌 제주 특유의 시커먼 현무암 탑이라서 눈길을 끈다. 현재 삼첩칠봉에는 원당사 자리에 들어선 조계종의 불탑사와 길 건너편의 태고종 원당사, 원당봉 안에 자리한 천태종 문강사까지 세 사찰이 모여 있다.
원당봉은 울창한 숲을 이룬 굼부리로 북쪽으로 트인 말굽형이다. 가장 낮은 문강사 들머리에서 좌우로 능선을 따라 탐방로가 조성되었다. 동쪽이 다소 가파르고, 서쪽을 따르면 비교적 완만하게 정상까지 이어진다. 길은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넉넉하다. 능선을 따라 굵고 키 큰 나무가 많아 숲이 좋다. 봉수대 터엔 정자와 쉼터가 조성되었고, 길도 비교적 넓고 쾌적하다. 운동시설이 갖춰진 정상에서는 한라산과 제주 동쪽 오름들이 훤히 조망된다.
산허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탐방로도 있다.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는 이 길은 큰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