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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택 공급 늘리겠다고 해도 재개발이 쉽지 않은 이유

정부가 주택 공급 늘리겠다고 해도 재개발이 쉽지 않은 이유
행정 절차 간소화와 신속한 인허가만으로 재개발 사업이 순탄하게 추진되기는 어렵다. GETTYIMAGES
행정 절차 간소화와 신속한 인허가만으로 재개발 사업이 순탄하게 추진되기는 어렵다. GETTYIMAGES

[돈의 심리] 빌라, 다가구·상가 건물 소유주 이해관계 달라 주민 합의 매우 어려워

행정 절차 간소화와 신속한 인허가만으로 재개발 사업이 순탄하게 추진되기는 어렵다. GETTYIMAGES

지인 A가 기쁜 얼굴로 근황을 들려준다. 자기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려 한단다. A는 지금 서울 한 빌라촌에 살고 있다. 세 들어 사는 게 아니라 소유주다. 그러니 재개발이 이뤄지면 아파트 소유주가 된다. 그동안 동네에서 재개발 얘기가 전혀 없었는데, 최근 정부가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린다는 말이 들리면서 동네가 들썩이고 있다. 재개발과 관련해 플래카드도 걸렸다. 이제 자기도 서울에 아파트를 갖게 됐다며 기뻐하고 있다.

지금 재개발 어느 단계냐고 물어봤다. 주민 동의서를 모으고 있단다.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동의서다. 동네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어 금방 정비구역 지정에 필요한 동의율을 넘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지지하고, 또 정부도 적극 지원한다고 하니 앞으로 4~5년 후면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다. 그냥 축하한다고 얘기한 뒤 넘어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고, 중간에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설령 끝까지 진행된다고 해도 아무리 빨라야 10년 이상 걸린다고 말해주는 게 좋을까.

A는 정부가 주택 공급을 적극 지지하고, 모든 절차를 앞당기겠다고 하며, 인허가를 빨리빨리 해주려고 하니 재개발이 빨리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는 주택 공급 절차를 빨리 진행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재개발에서 정말 어려운 부분은 주민 동의다. 정부가 아무리 빨리 공급하겠다고 해도 소용없다. 정부는 주민 반대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절대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다. 재개발 진행이 어려운 주된 이유다.

그런데 빌라를 아파트로 바꾼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나. 모두가 다 찬성하지 않을까. 가끔 새 아파트는 됐다, 그냥 지금 사는 곳에 살겠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다. 이들 때문에 재개발이 멈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빌라를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은 다수가 찬성한다.

문제는 정부가 재개발을 허가할 때 내거는 조건이다. 주민들이 빌라촌을 아파트로 바꾸겠다고 할 때 정부가 그냥 인허가를 내주는 경우는 없다. 항상 조건을 붙인다. 대표적인 것이 땅을 일부 기부해라, 임대주택을 어느 정도 이상 만들라 등이다. 그러면 이 조건에 대해 주민들 의견이 갈린다. 땅을 많이 기부하고 임대주택을 많이 만들더라도 빨리 재개발을 진행하자는 쪽과 그렇게까지 해서 빨리 진행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 맞선다. 정부가 바뀌면 이 조건이 많이 달라진다. 후자는 나중에 이 조건들이 완화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바꾸는 재건축의 경우 보통 이렇게 정부가 내건 인허가 조건에 대한 찬반이 주요 분쟁 사항이 된다. 빌라촌을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도 정부의 인허가 조건이 문제가 되기는 하는데, 재개발에서는 더 중요한 반대 세력이 있다.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들이다. 이들은 보통 재개발을 반대한다. 그냥 반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재개발을 하면 이들은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빌라 한 채를 보유한 사람은 대지 지분이 몇㎡ 안 돼도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는 보통 165.3㎡(약 50평) 이상 땅을 갖고 있다. 이렇게 땅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아파트가 여러 채 나오는 것은 아니고, 2채까지만 분양받을 수 있다. 넓은 평형 2채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중 한 채는 주거전용면적이 60㎡ 이하여야 한다.

현금청산과 다주택자 세금 중과로 손해 발생

165.3㎡ 땅에 빌라 8세대가 있으면, 이 8명 각각에게 아파트 분양권이 나온다. 그런데 같은 면적의 다가구주택을 보유하면 아파트 1채+60㎡ 이하 아파트 1채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소유 면적 대비 분양되는 아파트 가치가 더 낮고, 그 차이는 현금청산된다. 현금청산될 때 시가를 제대로 쳐주면 손해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현금청산은 시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진행된다. 결국 현금청산은 손해다.

그리고 아파트 2채를 주는 것도 문제다. 지금 한국은 다주택을 강력하게 규제한다. 다가구주택 소유주가 아파트 2채를 받으면 그 자체로 다주택자가 된다. 세금이 크게 오른다. 상가 건물 소유주는 현재 사는 집까지 포함해 저절로 집 3채 이상을 가진 다주택자가 된다. 많은 비중이 현금청산되고, 아파트 2채를 받은 뒤에는 다주택자로 분류돼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는 재개발이 되면 손해를 본다.

더 큰 문제는 현금흐름이다.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는 월세를 받아 살아간다. 그런데 다가구주택·상가 건물이 아파트로 바뀌면 월세 수입이 사라진다. 생활비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새 아파트를 가지게 됐으니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당사자는 아파트만 있고 매달 살아갈 돈은 없다.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 입장에서 재개발은 자기 사업을 사라지게 하는 변화다. 회사가 정리해고할 때 근로자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한다. 마찬가지로 다가구주택 소유주들도 재개발에 결사반대한다. 생계가 걸린 일에는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빌라촌에서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는 소수다. 다수결로 결정되는 재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들 목소리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재개발은 단순히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재개발에는 다수결 말고 토지 지분이라는 또 하나의 기준이 필요하다. 재개발이 진행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 토지 지분의 찬성이 필요하다. 다가구주택 소유주는 비록 인원수는 적지만 보통 주민들보다 훨씬 많은 토지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 몇몇이 반대하면 재개발에 필요한 토지 지분을 넘기기 힘들다. 재개발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이들은 재개발로 명백히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소수 몇 명 때문에 사업 진행이 안 된다고 이들의 이기심을 비난한다. 하지만 다주택자 세금 중과 등 이들이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이들을 비난하는 건 무리다. 자기 자신도 그들 사정이었다면 재개발에 반대했을 것이다.

지인 A는 주민 모두가 찬성하고 있다고, 재개발이 빨리 진행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가구주택·상가 건물 소유주 등 반대자들은 처음부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이후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등 재개발이 진행될수록 점점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에는 다수결이 중요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토지 지분 보유율이 중요해진다. 이들은 보통 주민들보다 자금력이 있고, 시간적 여유도 상대적으로 많다. 자금과 시간을 들여 더욱 조직적으로 반대 활동에 나선다.

한성숙 국무총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8월 29일 서울 성북구 장위14구역 재개발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뉴스1

행정절차 간소화해도 이해관계 충돌은 여전

정부는 이런 반대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반대가 없으면 재개발 절차를 진행하겠다, 합의안을 가져오면 진행하겠다는 얘기만 한다. 현재 모아타운의 경우 절대다수 주민이 신청해 정비사업지로 선정됐다고 해도 소유주의 25%, 토지 면적의 33% 이상의 반대 민원이 들어오면 무조건적으로 정비사업 구역을 해제한다. 이 정도 반대만 있어도 사업은 진행되지 못한다.

결국 재개발은 그 지역에 다가구주택·상가 건물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다가구주택이 많으면 진행되기 힘들고, 이런 소유주가 적으면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진행이 잘 된다고 마냥 모두에게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반드시 그 지역에는 재개발로 큰 손해를 보는 건물주가 있다. 워낙 소수라서 그냥 당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정부가 행정 절차를 줄이고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해서 정말로 주택 공급이 원활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그건 주민들이 합의를 잘하면 빠르게 진행되도록 해주겠다는 얘기다. 이때 진짜 걸림돌이 되는 건 주민들 합의다. 이익과 손해가 서로 얽힌 주택 개발에서, 그리고 현 한국 주택 제도 하에서 주민들 합의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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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간동아 https://n.news.naver.com/article/037/0000038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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