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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철조망을 걷어내자

철조망을 걷어내자
홍성담(왼쪽)·전정호 작가가 2026년 10월9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에서 철조망 상여를 만들고 있다.
홍성담(왼쪽)·전정호 작가가 2026년 10월9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에서 철조망 상여를 만들고 있다.

[이정우의 데자뷔]분단 현장 모인 예술가와 시민들… 상여와 그림으로 빚은 평화 메시지

홍성담(왼쪽)·전정호 작가가 2026년 10월9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에서 철조망 상여를 만들고 있다.

‘방어’라는 이름의 지뢰로 인명이 살상되고 그 책임과 대응을 놓고 날 선 대치와 긴장이 팽팽한 남북 분단의 경계를 생명과 평화의 자리로 바꾸고자 예술가들이 나섰다. 예술가들은 그 갈망과 염원을 담은 작품들을 앞세워 2026년 10월9일 분단의 현장을 찾았다.

이들이 모인 곳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와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북쪽 지역인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리비교 바로 앞이다. 군사분계선과 직선거리로 2㎞가 채 안 되는 곳이다. 이 다리는 한국전쟁 때 대전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미군 조지 리비의 이름을 따서 1953년 7월에 지어졌다. 노후화로 안전이 문제가 되자 2023년 이를 철거하고 새로 지은 뒤 다리 앞에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생명평화미술행동’이란 이름으로 ‘인권·환경·평화’의 가치를 훼손하는 곳에서 즉석그리기·함께만들기·전시 등의 예술 행위와 함께 구호·행진 등 사회적 몸짓을 펼쳐왔다. 2019년 전남광주 영광 한빛 핵발전소 앞마당에서 시작된 ‘탈핵’ 생명평화미술행동을 시작으로 연안환경미술행동, 코로나퇴치미술행동, 새만금살리기미술행동, 미얀마 민주 회복을 위한 미술행동, 우크라이나전쟁 반대 미술행동 등을 이어왔다.

이날 고근호, 김재석, 김진열, 김희련, 박건, 박성우, 박태규, 서진선, 서혜경, 성냥불, 성효숙, 전상보, 전정호, 전혜옥, 홍성담, 홍성민 등 16명의 작가가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품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 중 민중미술 1세대인 홍성담(71) 작가가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떠나보내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자’는 뜻으로 ‘철조망 상여’를 기획했다. 이에 전정호·전상보·박성우 작가가 함께해 현장에서 나무 상여 틀에 수십 개의 철조망을 잘라 꽂았다. 네 귀퉁이에 한반도 깃발과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들도 자리했다. 그리고 이 상여를 리비교가 바라보이는 공원 빈터에 놓고, 이날 생명평화미술행동에 참여한 작가와 어린이어깨동무, 파주농민회, 평화마을짓자 등 단체 대표자와 시민들이 종이꽃을 달았다. 상여에 달아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종이꽃을 각각 꽂아, 분단을 극복하고 대결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이루려는 뜻이다.

또 한쪽에선 4m 길이의 캔버스에 참여자들이 평화와 생명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어떤 이들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글로 적었다.

홍성담 작가는 이날 제작한 철조망 상여와 함께 그린 그림을 동아시아인권평화미술관에 영구 소장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신의도에 건립 중인 이 미술관은 2027년 5월 완공 예정이다.

상여와 그림을 완성한 이들은 참여 작가들이 가져온 걸개그림과 현장에서 추가로 그린 그림들로 만장을 만들어 세운 뒤, 상여를 앞세운 채 장파리 읍내를 돌며 행진했다. 장파리는 한국전쟁 뒤 주둔한 미군들이 유흥을 즐기는 기지촌 문화가 번성했던 곳이다. 그 유흥의 중심인 미군 전용 클럽 ‘라스트 찬스’가 있던 건물 앞에서 ‘철조망 철거, 민통선 해제’를 외친 이들은 이날 함께한 작품들을 10월22일까지 이곳에 전시한다.

생명평화미술행동 ‘평화랑 뒹굴자’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이 철조망 상여에 종이꽃을 꽂고 있다. 뒤편에 임진강을 가로지른 리비교가 보인다.

생명평화미술행동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이 리비교 앞 공원에서 커다란 캔버스에 저마다의 생각과 표현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진열 작가(맨 왼쪽) 등 생명평화미술행동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이 철조망 상여를 앞세운 채 평화를 갈망하는 만장을 들고 리비교 역사문화공원을 나서 장파리 읍내로 향하고 있다.

이날 행동에 함께한 김순현 경기도의원은 “통일대교 남단부터 임진강 상류 구간은 현재 군이 경계근무를 서지 않고 광학장비로 감시하고 있다”며 “임진강 북쪽에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사실상 철조망이 필요 없어 철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10월20일에는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 위원들이 함께 파평면 두포리를 찾아 농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철조망과 방어벽 등을 철거하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며 “서명운동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정호 작가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미술행동 거리행진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겠지만 평화를 향한 작은 희망도 생겼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홍성담 작가도 “이번에 서부전선 서쪽 끝에서 생명평화미술행동을 했으니 이를 강원도 인제·고성 등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이어가자는 의견이 작가들 사이에 모아졌다”고 전했다.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출처: 한겨레21 https://n.news.naver.com/article/036/000005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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