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옮기느냐 마느냐,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한예종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전 법안이 논란이다. 기습적인 발의에 학교 구성원은 강하게 반발한다. 예술교육을 선거 재료로 삼는 세태에 대한 비판도 뒤따른다.
1991년 12월 19일,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날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안건으로 밀어붙였다. 당시만 해도 국가가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교육부의 일로 여겨졌고, 여타 국무위원들도 어째서 문화부만 특혜를 주냐며 반발했다. 이 전 장관은 훗날 2022년 1월 18일, 〈중앙일보〉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당시 국무위원들을 설득하며 꺼낸 말을 이렇게 복기했다. “지금 예술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엘리트가 아니고, 사실은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여기 못 들어오면 은행원,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거죠.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30년 넘게 다양한 예술가를 키워내는 산실로 기능한 한예종의 시작은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진 한 각료의 ‘정치적 승부와 설득’에서 비롯됐다.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한예종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핵심은 한예종 ‘이전’이었다. 이 법안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그동안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석사·박사 학위가 인정되지 않았던 한예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 그리고 그 소재지를 행정 통합으로 설치될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둔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한예종 광주 이전을 입법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이다.
별도 공청회나 예고도 없이 한예종의 소재지 이전을 입법으로 강제하는 시도에, 학교와 학생들은 곧바로 반발했다. 4월 23일 한예종 총학생회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예술대학을 정치 목표 달성을 위해 잘라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학생들은 “본 법안은 교육기관의 본질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외면한 채,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학교를 이전 가능한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라며 대학 이전을 정무적 이해관계로 결정하지 말라고 반발했다. 한예종 본부도 4월 28일 입장문을 통해 “(예술교육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전 논의는 대한민국 예술교육의 경쟁력을 약화할 우려가 크다”라며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5월 2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지역으로 캠퍼스를 옮긴다는 생각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다양한 의견 가운데 하나를 ‘이미 결정되어 추진하려는 안’처럼 오해하지 않으시길 당부드린다”라고 전했다. 최 장관의 선언으로 이번 이전 논의는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사실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입법 시도 이전부터 한예종을 둘러싼 다양한 요구가 존재했고, 이번 한예종 이전 논란이 건드린 한국 사회의 뇌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예종 캠퍼스 문제는 사실 한예종이라는 교육기관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1991년 정치적 승부와 설득 끝에 한예종이 출범할 수 있었지만, 한예종이 설립 초기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국가가 지원하는 예술학교이지만, 석사·박사 학위가 인정되지 못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입법 요구도 계속되었다. 한예종은 1991년 설치령이 제정된 이후 설립 초창기에는 남산 일대에 자리 잡았다. 1995년 안기부가 서울 강남구 내곡동으로 이전한 후, 비어 있던 안기부 옛 건물로 옮겨온 것이 1996년이다. 권위주의 정부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공간에 예술교육의 씨앗을 심었지만, 이 땅을 관리하는 국가유산청의 문화재 복원 움직임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흐름이었다.
한예종 캠퍼스 문제는 지방선거 때마다 일부 지역에서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다. 이 학교 캠퍼스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한예종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옛 안기부 건물과 주변 부지를 본 캠퍼스로 이용하고 있다. 대학 본부와 상당수 학과가 이곳에 있다. 그러나 음악원을 비롯한 일부 기능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으로 떨어져 있고,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도 일부 기능이 분산되어 있다.
한예종은 1996년부터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옛 안기부 건물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석관동 캠퍼스는 서울 의릉과 맞붙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의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중 하나다. 오히려 국가유산청은 의릉 복원을 위해 현재 한예종이 사용하는 캠퍼스 일부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이 자리한 석관동 캠퍼스 남쪽 권역은 의릉 복원의 핵심 구역 중 하나다. 2008년 12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의릉 능제복원 기본 및 실시설계’에 따르면, 부지 남부에 있는 한예종 건물을 2014년까지 철거하고 의릉의 ‘외백호 부분을 복원’하겠다고 명시해두었다. 그러나 의릉 복원 기본계획은 18년째 표류했고, 한예종의 캠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