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면 바로 자퇴합니다"…서울대생도 줄선다는 '이곳' [시선'칩'중(上)]

취준생 '시선', '칩' 회사로 집'중' (上)
블라인드, 대학생 설문·현직자 게시글 분석
하이닉스 생산직 취업에 43% "중퇴 가능"
삼성·SK 계약학과 지원도 역대 최대 기록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사진=뉴스1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사가 대학 진학과 학업 지속 여부를 저울질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생산직에 취업할 수 있다면 대학 졸업장을 포기할 수 있다는 최상위권 대학생들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두 회사의 취업 인기가 치솟는 가운데 현직자들이 말하는 '일 잘하는 신입'의 조건도 전통적인 스펙과는 사뭇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이냐, 하이닉스냐…대학생 선택 '팽팽'
3일 한경닷컴이 블라인드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대학생 중 43%는 "SK하이닉스 생산직에 취업할 수 있다면 대학을 중퇴할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블라인드가 지난달 '현직자 Q&A' 채널을 통해 대학생 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는 응답도 43%로 조사됐다. 13%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특히 설문에 참여한 서울대·고려대 재학생들은 '중퇴할 수 있다'는 응답이 100%에 달했다.
실제 취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SK하이닉스가 지난 4월 이천·청주·용인 사업장에서 근무할 생산직 신입을 모집하자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는 4년제 대학생들이 휴학이나 자퇴 후 지원할 수 있는지를 묻는 글이 잇따랐다. 당시 모집 직무는 설비 유지·보수와 라인 운영을 맡는 '메인트'와 장비 운영·품질 검사를 담당하는 '오퍼레이터'였다. 지원 자격이 고졸·전문대 졸업자로 제한되면서 높은 경쟁률을 빗댄 '하닉고시'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취준생들 시선이 이들 회사로 쏠린 이유는 반도체 호황과 맞물려 '억소리' 나는 성과급이 주어지고 있어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 노사 합의로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상한을 폐지했다. 올해 초엔 지난해 실적에 따른 PS를 기본급의 2964%로 책정했다. 연봉 1억원인 직원이라면 산정액이 1억4820만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80%는 올해 지급하고 나머지 20%는 이후 2년에 걸쳐 나눠 받는다.
삼성전자도 지난 5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했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유지하면서 노사가 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별도 재원으로 마련하는 방식이다. 부문과 사업부에 각각 40%, 60%를 배분하며 성과급은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한다. 이 제도는 향후 10년간 적용하기로 했다.
두 회사 선호도는 대학 입시에서도 확인된다. 종로학원 집계를 보면 202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한양대 등 5개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에 5992명이 지원했다. 전년보다 19.4%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평균 경쟁률도 23.90대 1에서 28.53대 1로 올랐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성균관대 지원자는 2840명으로 11.7% 증가했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서강대·한양대에는 3152명이 지원해 27.3% 늘었다. 학교별 경쟁률은 서강대 66.15대 1, 한양대 44.41대 1, 성균관대 36.84대 1 순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취업난과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기대 등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계약학과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입사 후 조직에 잘 적응하는 신입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두 회사 간 차이가 있었다. '블라인드 AI'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재직자의 공개 게시글·댓글에서 신입·후배의 조직 적응, 업무 방식에 관한 내용을 분석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성과·보상·제도'가 두드러졌고 SK하이닉스에서는 '팀'이 핵심 단어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경우 '보고', '평가', '리더' 등 조직 체계와 연결된 표현이 많았다. 회사의 업무 방식을 익히고 보고·평가 체계 안에서 성과를 인정받는 능력이 중요하게 거론됐다. 블라인드 AI는 조직의 관계와 분위기를 읽으면서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는 '조직형'의 특성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에서는 팀에 빠르게 녹아들고 선배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배우는 태도가 강조됐다. 혼자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동료와 함께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게 언급됐다. '관계', '소통', '눈치'도 함께 등장했다. 블라인드 AI는 이를 '팀플레이어형'으로 정리했다.
삼성전자 합격 사례에서도 비슷한 특성이 확인됐다. 취업정보회사 제로베이스가 삼성전자 합격자·현직자 설명을 종합해 만든 취업 전략서에는 스타트업 인턴 당시 스크럼 방식의 개발 환경에서 협업한 경험을 자기소개서·면접을 통해 강조한 사례가 소개됐다. 동적 웹페이지 크롤링 문제를 해결한 과정이나 UI 개발을 먼저 진행해 팀 전체 개발 속도를 높인 경험처럼 기술 자체보다 자신이 맡은 문제와 해결 과정, 팀 기여도를 보여주는 방식이 주요 합격 사례로 제시됐다.
채용 방식 자체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바뀌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 기술사무직 신입 채용부터 학력 제한을 없앴다. 기존 20~30분 면접 대신 반나절 동안 과제 수행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반나절 심층면접'을 도입했다. 직무 전문성, 인공지능(AI) 활용 능력, 논리적 사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서류에서도 기존 자기소개서 대신 AI 활용 역량과 반도체 직무 전문성을 기술하도록 했다.
단순히 이름난 회사의 인턴 경험이나 최신 기술을 많이 적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조언도 나온다. 프로젝트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풀었는지, 팀원과 어떻게 협업했는지를 설명하는 능력이 실제 채용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한 백엔드 개발자는 "프로젝트 경험은 기술의 최신 트렌드와 직접적인 연관성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했는지, 그리고 결과물을 통해 배운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큰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