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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으로 환각을 부르는 10대의 ‘오디’ 세계

감기약으로 환각을 부르는 10대의 ‘오디’ 세계
정민하씨가 약물 오남용을 뜻하는 ‘오디’ 커뮤니티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정민하씨가 약물 오남용을 뜻하는 ‘오디’ 커뮤니티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감기약 과용 후기와 약물 제조법을 공유하는 오디(OD) 문화에 빠져드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정민하씨가 약물 오남용을 뜻하는 ‘오디’ 커뮤니티의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딸 지연이(가명)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평소와 달랐다. 늘 맞춤법에 신경 쓰며 문자를 보내던 딸이 자음과 모음이 흩어진, 뜻을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불길한 직감에 어머니 정민하씨(가명)는 몸이 굳었다. ‘기어코.’ 그 말이 엄습했다. 집에 도착해 만난 지연이는 좀비처럼 허리를 접고 집 안을 느리게 걸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풀린 눈으로 화장실 슬리퍼를 얼굴 앞에 바짝 대고 휴대폰 자판을 치듯 슬리퍼 바닥을 엄지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지연이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고작 중학생이었다.

몇 달 전 처방받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약이 문제였다. “학교생활을 힘들어했어요.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 여기저기가 아플 만큼 증상도 있었고요. 여러 병원을 다녔는데 지연이가 먼저 정신의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ADHD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흔히 복용하는 약이었다. 어느 날 여러 알을 한꺼번에 먹은 지연이는 평소와 달리 학교에서도 즐거워하며 많이 웃었다. 그 기분을 또 느끼고 싶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디(OD)’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디’란 복약 기준에 따르지 않고 한 번에 약물을 다량 복용하는 ‘오버도스(Overdose)’의 줄임말이다. 지연이는 오디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SNS 커뮤니티에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오늘 야식으로 △△ 먹으려고 하는데 450(㎎) 먹다가 2550 먹어도 될까요?’ ‘내성만 생기고 쓰러집니다. 600까지만 올리세요.’ ‘○○ 약 130(㎎)까지 먹어봤는데 왜 효과가 없을까요?’ ‘○○ 먹고 반감기 때 멘헤라(‘Mental Health’의 일본식 변형어로 감정 기복이 크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뜻한다) 터지고 힘들었어요. 환각이나 환청 없는 건 □□입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약을 추천하기도, 약의 부작용을 설명하며 말리기도, 약 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때로는 늦은 밤에 영상통화나 라이브 방송을 하며 서로 외로움을 달랬다. ‘따돌림도 비난도 없는 안전한 돌봄 공동체.’ 지연이는 그렇게 오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정민하씨와 지연이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정씨는 휴대전화를 늘 두 개 들고 다닌다. 하나는 딸 지연이에게서 빼앗은 휴대전화다. 하얀색 배경 화면 상단에는 ‘D-8’이라는 글자가 띄워져 있다. 지연이가 SNS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와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한 날을 표시한 것이다. 정씨는 지연이가 오디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안 이후, 직접 오디 커뮤니티에 가입했고 그곳에 올라오는 채팅 대화를 매일 빠짐없이 챙겨 읽었다.

그러다 지연이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지연이와 다른 친구가 서울 동대문에 있는 약국을 다니면서 감기약을 모으기 시작하는 거예요. 디데이가 되면 SNS 라이브로 자신들의 마지막 모습을 방송하겠다고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아이를 살리고 봐야 하니까 결국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벌써 두 번째네요.”

정씨의 눈에 지연이가 벗어나지 못하는 오디 커뮤니티는 위험한 유혹이 가득한 곳이었다. 대리구매 사이트를 이용해 불법으로 약물을 판매하거나 공동구매했다. 임의로 약물을 섞어 먹는 것을 ‘치료’라고 말하기도 했다. 택시비를 내줄 테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다 같이 약을 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마약 판매상들이 오디를 하는 청소년 계정에 DM(쪽지)을 보내며 접근하기도 했다. SNS에서 ‘우울계(우울 계정)’ ‘정병계(정신병 계정)’ 등의 해시태그로 교류하는 10대는 쉽게 타깃이 됐다. 지연이 역시 마약 판매업자의 쪽지를 받았다.

취재진을 만난 날, 정씨는 지연이의 중학교 학적을 정리했다. 약물중독에 빠진 이후 학교에 거의 나가지 못했던 지연이는 교실이 아닌 폐쇄병동에서 10대의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연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감기약, 기침약, 수면유도제처럼 약국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과용하는 ‘오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10대 청소년 사이에 일반의약품·전문의약품을 과다 복용하는 오디 문화가 퍼지고 있다. 통계는 이미 이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2025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제출받은 ‘의약품 중독 진료 현황’에 따르면 의약품 중독 환자는 2020년 1만6256명에서 2024년 1만6018명으로 1.46% 감소했으나, 10대 환자는 같은 기간 1375명에서 1918명으로 39.49% 급증했다. 2025년 의약품 오남용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10~19세 청소년 역시 전년(2459명) 대비 약 21.8% 늘어난 2994명이다. 15~19세 여학생 수는 1342명으로 같은 연령대 남학생(324명)의 약 4배에 이른다(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실).

뭉뚱그려진 숫자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청소년 유해약물 사용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에는 전국 중고등학생 33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다. 응답자의 5.2%가 ADHD 치료제·기침억제제·식욕억제제·수면제·신경안정제·항불안제 등 7종의 ‘의료용 마약류’ 중 최소 1개 이상을 비의료 목적으로 복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평생 한 번이라도 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 비율(4.2%)보다 높다. 6개월 이내 비의료용으로 마약류를 사용한 적 있다고 답한 청소년 중 24.4%는 ADHD 약물을 복용했다고 답했는데, ADHD 치료제 복용자 23.1%는 한 달에 20회 이상 약을 찾았다. 약을 찾은 주된 이유는 ‘심리적 고통을 덜기 위해(31.1%)’ ‘집중력 향상(24.4%)’이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오디 문화’를 확산시키는 진짜 문제는 ADHD 같은 처방약 외에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약국이나 약품 대리구매 사이트에서 다량으로 구입하는 수면유도제·진통제·감기약·해열진통제 같은 일반의약품이다. 일반의약품이라 해도 이런 약품에 들어 있는 성분 중에는 과용 시 환각이나 섬망, 의식장애 및 경련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들이 있다. 실제 2024년부터 시중의 감기약 등을 대량 구매해 그 안에 든 원료로 마약을 제조한 일당이 올해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일부 청소년의 일반의약품 오남용 양상 역시 심각해지고 있지만, 모방 가능성을 염려해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법 약물을 만드는 재료가 합법이니 그것을 오남용해도 막을 길이 없다.

ADHD 약과 관련한 수치를 가볍게 봐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ADHD 약은 오디의 세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다. 이 약은 10대에게 약물의 효용성을 알려주는, ‘약물의 세계’에 진입할 때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대표적인 ‘관문 약물(Gateway Drug)’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ㄱ씨는 얼마나 많은 아동ㆍ청소년이 병원을 찾는지 설명하며 “직장인들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6~7세의 아동도 진료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동에게 산만함·충동 행동·공격성이 보인다며 부모가 ADHD를 의심하면서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 아이들은 약을 기피하고, 어른들은 약을 먹이려 한다.

약물복용은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전문의 진단에 따른 적절한 복약은 마음의 무너진 곳을 회복시켜준다. 하지만 이것은 ‘약물이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ㄱ씨의 말이다. “심각한 수면장애나 불안장애, 공황발작 등으로 약물복용 같은 의료적 개입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동ㆍ청소년 중에는 본인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이를 표현하지 못해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약물이 아닌 놀이치료나 사회화 활동, 지속적인 상담, 부모의 관찰과 훈련 등이 더 적절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동ㆍ청소년의 소란이나 감정 표출을 ‘문제 행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 너무 쉽게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위기 청소년을 지원하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의 국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청소년은 ‘못생기면 왕따를 당한다’는 또래 문화 속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심한 강박이 있었다. 청소년이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자 어머니가 나비약(식욕억제제)과 향정신성의약품을 대신 구입해주기도 했다. 학급에 학생 수가 워낙 적으니 한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학교생활 자체가 고립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긴장감을 풀기 위해 약을 찾기도 한다. 결국 힘든 일이 생기거나,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 청소년들은 약물을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리어 내가 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온 아동들은 처방전 없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자신에게 최적화된 약을 스스로 ‘제조’하기 시작했다. 오디 문화의 대표적 양상 중 하나는 ‘사이로그 저널(PsyLog Journal)’이라는 약물 기록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약품명과 복용량 등을 기록해 패턴을 분석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가장 적절한 용량을 실험하고 계산해 오디를 한다. 몸이 실험 도구가 되고, 그것을 SNS에 인증해 과시하고 인정받는다. 소속감을 느낀다. 동시에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을 보낸다.

서울 종로5가의 약국 거리. 청소년 약물 오남용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IN 이명익

올해 6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은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복약 지도를 의무화하고, 미성년자에게 적정 사용량을 초과해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며, 판매 기록을 작성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안이 무색하게 청소년의 ‘약국 원정’을 막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 유해약물 등’으로 지정돼 나이·본인 확인이 의무화된 것은 주류·담배·마약류, 그리고 부탄가스·본드 같은 환각성 물질(유해화학물질)뿐이다. 게다가 일반의약품을 대량·저가로 판매하는 창고형 약국이 확대돼 복약 지도 없이 약품을 구매하기 쉬워졌다. 최근에는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 12월부터 의약품 배송도 시행될 예정이다.

약물 구입을 규제하는 법안과 약물 구입의 편의성을 높이는 제도가 양립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관점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할까? 조소연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는 성별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처럼 ‘아동정책영향평가’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아동정책영향평가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로 아동복지법에 근거를 두고 마련된 제도다. 새로운 제도와 사업이 시행될 때 그것이 아동의 삶과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책의 ‘내용’과 ‘절차’ 양면에서 검토하도록 세부 기준을 둔다. “다양한 약품을 언제든, 원하는 만큼, 쉽게 구입하면 좋다는 것은 성인의 시각에서 본 정책평가다. 청소년들의 약물 오남용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시급히 정비해야 할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의약품에 대한 비대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최선일까? 그것이 아동의 생명과 안전에 닿아 있는 생존권 문제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아동정책영향평가는 우리 사회에 아동ㆍ청소년이 동등한 시민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들의 삶에 대한 민감성과 상상력을 키우도록 하는 제도다.”

해외 물품 구매 대행 사이트 역시 빈틈이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일반·전문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 알선하는 행위는 약사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그럼에도 공공연히 해외 의약품을 대리 판매하는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J 사이트에서는 기침감기약인 일본산 M 제품을 판매한다. 이 제품은 마약류 성분 단일제 제품으로 일본 내에서도 ‘대체 마약’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이버조사팀을 가동해 의약품의 온라인 불법 판매 등을 모니터링하고, 약사법 위반 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민하씨가 지난 6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 같은 의약품 구매 대행 사이트를 수차례 신고했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판매 제재가 내려진 사이트는 한 곳도 없다.

2025년 서울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 최초로 마약관리센터를 설립했다. ©서울시 마약관리센터

2023년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2025년 10월 전국 최초로 마약관리센터를 설립했다. 서울시마약관리센터에도 의약품 중독으로 내원·입원하는 10대 환자가 늘고 있다. 이보라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이곳에서 약물중독 청소년의 회복과 사회적응을 돕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이 약물중독에 빠져드는 이유와 그것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의 경우 약물을 통한 쾌감, 환각 자체를 목적으로 약물을 하지만 청소년은 자신이 직면한 복합적인 문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약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적 문화, 부모와의 갈등이나 교우 관계의 어려움 등 자신이 통제하거나 극복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청소년은 자신을 학대한다. 식이 제한·자해·약물 오남용·자살 시도 등으로 고통을 표출하고, 문제를 회피한다. 때로는 그 후 돌아오는 돌봄과 관심 등 2차적 이득이 스스로를 해치는 목적이 되기도 한다.

성인과 청소년의 약물중독 원인이 다르듯 결과도 다르다. 이보라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그것을 “어른이 될 준비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독치료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당신만이 할 수 있지만 당신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어른이 될 시간을 잃어버린 청소년을 혼자 두지 않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다.

출처: 시사IN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3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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