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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뉴스타파] 혐오 정치의 시대 - “네 이웃의 상처를 혐오하라”

[다큐 뉴스타파] 혐오 정치의 시대 - “네 이웃의 상처를 혐오하라”
지난 8월 13일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열린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토론회.
지난 8월 13일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열린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토론회.

지난 8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토론회. 행사를 주최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토론회가) 5·18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토론회가 아닐까 자부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요사태”라고 부르거나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8월 13일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열린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토론회.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헤집는 말들은 어떻게 정치의 자원이 됐을까. 뉴스타파는 5·18 유가족과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 이들이 겪어온 혐오와 모욕의 실상을 들었다. 국가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되는 현실, 그 뒤에서 혐오를 부추기고 이용하는 정치의 구조를 살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는 특정 집단이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나 모욕, 부정적 태도”라며 5·18 유공자를 향한 혐오가 오랫동안 누적돼 온 사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혐오가 돈이 되고 조직이 되고 정치인의 자원이 되는 구조”라며 이진숙 의원의 행보를 “혐오의 자원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끝나지 않는 고통, 5·18의 상처를 헤집는 정치

클수록 생각이 더 나요. 보고 싶을 때는 제가 그래요. 엄마 꿈속에라도 한번 보자.

- 김길자 여사 /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고 문재학 열사 어머니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에 아들을 잃은 김길자 씨는 시간이 갈수록 아들이 더 보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 고 문재학 열사는 광주상고 1학년 때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숨졌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

김 씨는 아들을 잃은 뒤 5·18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에 헌신했다. “폭도 누명 벗긴다고 내가 지금까지 투쟁을 했다”는 그는 “내 자식 살려내라”고 외치며 서울과 광주를 오갔다. 돌아온 것은 탄압이었다. 김 씨는 전두환 정권 당시 시위를 막으려는 당국에 의해 강제로 차에 태워져 경남 함안으로 연행됐고, 남편과 함께 배에 태워져 전남 여수의 섬 안도(安島)로 보내지기도 했다. 경찰의 무전기에 맞아 얼굴에서 피가 난 적도 있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됐다. 이듬해 전두환은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24년에는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5·18의 비극이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 왜곡과 폄훼는 멈추지 않았다. 김길자 여사는 5·18을 왜곡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김을 세게 하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이진숙 의원에 대해서는 “귀도 없고 눈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렸다”고 말한다.

세월호에서 이태원까지… 상실 뒤에 이어진 혐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딸 세은 씨를 잃은 진정호 씨는 매주 충북 옥천의 한 사찰과 인근 봉안당을 찾는다. 사찰에는 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는 “딸과 항상 같이 다닌다는 생각을 한다”며 딸의 사진 앞에서 “담배를 줄일게” 같은 다짐을 한다고 했다.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진 씨와 유가족들이 마주한 것은 위로만이 아니었다. 진 씨는 유가족들이 녹사평에 처음 분향소를 차리려 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분향소를 차리려고 새벽 6시에 거길 갔거든요. 그랬더니 보수 단체들이 집회 신고를 먼저 해서 거기다 진을 치고 있더라고요.” 한 유가족은 무릎을 꿇고 추모할 공간을 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시체팔이 새끼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애들이 놀러 가서 뒤졌으면 조용히 집에나 있지”라는 모욕이었다.

2차 가해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였던 고 이재현 군은 참사 현장에서 친구 두 명을 잃었다. 이후 희생자들을 향한 모욕과 혐오에 반박하는 글을 직접 올렸지만, 그 글에도 ‘왜 놀러 가서 그런 일을 당했어’, ‘왜 그런 데 갔어’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군은 이후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이태원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로 인정됐다. 진정호 씨는 고 이재현 군이 “그런 댓글이나 그런 욕이 없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혐오와 모욕이 깊은 고통을 안긴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성욱, 유해종, 이재복 씨.(왼쪽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경기도 안산의 4.16희망목공소에서 만난 고 유미지 양의 아버지 유해종 씨는 “주위 사람들이 가슴에 못 박히는 소리들을 많이 했었다”며 ‘시체팔이 장사를 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고 이수연 양의 아버지 이재복 씨는 ‘그만 좀 해라, 할 만큼 하지 않았냐’는 말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아들 정동수 군을 잃은 정성욱 씨는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짚었다. 그는 “2차 피해가 대부분 사이버로 많이 일어났지만 수사가 많이 되지 않았다”며 “이것을 국가가 막아줘야 되는 건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까 계속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가 위로를 해주고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국가는 뒷짐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의 자원이 된 혐오, 어떻게 멈출 것인가

전문가들은 정치가 부추기는 혐오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과거에는 집단 행위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돈이 들고 사람을 동원해야 했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기존에 있는 인프라를 통해 정보를 뿌릴 수 있다”며 “혐오의 대규모 확산 유통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지병근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문화로서 혐오가 등장하고 계속 재생산되는 것”이라며 “12.3 내란 같은 극한의 정치 대결이 갈등과 조롱의 문화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끔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혐오가 정치적 동원에 쓰이고, 그 결과 깊어진 갈등이 다시 혐오를 키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뉴스타파가 만난 전문가들은 이를 끊기 위한 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혐오와 차별이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문제가 된 게 15년 정도가 됐다”며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구용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엄격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5·18뿐 아니라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와 같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를 못 해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무관용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큐 뉴스타파 ‘혐오 정치의 시대 - 네 이웃의 상처를 혐오하라’는 유가족의 증언을 통해 묻는다.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정치는 왜 그들의 상처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가.

출처: 뉴스타파 https://n.news.naver.com/article/607/000000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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