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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스터 페미니즘] 둘만의 안전가옥, 그 결혼의 환상

[미스터 페미니즘] 둘만의 안전가옥, 그 결혼의 환상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 작가는 『증명과 변명』에 이어『사랑과 안정』울 펴냈다. ⓒ한겨레출판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 작가는 『증명과 변명』에 이어『사랑과 안정』울 펴냈다. ⓒ한겨레출판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 작가는 『증명과 변명』에 이어『사랑과 안정』울 펴냈다. ⓒ한겨레출판

"네가 힘들 때 내가 버텨줄게, 내가 힘들 때 네가 버텨줘." 결혼을 앞두고 짝꿍에게 건넨 말이었다. 나름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낭만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희제의 『사랑과 안정』(한겨레출판, 2026)을 읽으며, 이 말이 얼마나 좁은 약속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안희제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소수자 인권 운동 현장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그 조건을 듣고 해석해온 작가다. 전작 『증명과 변명』(다다서재, 2024)은 스스로 죽음을 계획한 친구 '우진'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 사회가 청년 남성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과 그로 인한 좌절을 추적한 책으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올해의 교양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작 『사랑과 안정』은 20~30대 아홉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안정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책이 말하는 결혼에서의 안정은 세 가지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경제적 안정, 이 사람이 날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안정, 그리고 결혼했으니 나도 이제 제몫을 해냈다는 심리적 안정. 저자는 이 안정에 대한 갈망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하고자 정신분석가 줄리엣 미첼의 히스테리 이론을 가져온다.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나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사랑받던 자리에서 밀려나 없는 사람 취급받을 수 있다는 공포다. 연애가 유독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해당된다. 나 말고도 나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연애 시장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결혼은 이 불안을 잠재우는 제도적 장치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서로를 묶어두면 적어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나를 갈아치울 가능성은 크게 줄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안심을 얻는 방식이 남녀에게 다르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결혼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정해진 남성성 각본이 있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책임감 있게 해결하고, 배우자보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식의 각본 말이다. 이 각본을 히스테리 이론에 대입한다면 결국 '사랑을 주는 사람' 자리를 놓지 않는 것이다. 주는 사람은 버려질까 봐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대가로 배우자는 계속 '사랑을 받는 사람' 자리에, 그러니까 계속 불안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단순히 배우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며느리와 같은 더 확장된 가부장제 가족 관계 안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하게끔 여성을 압박한다.

남성성 각본을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내 결혼생활이 겹쳐 보였다. 얼마 전 짝꿍이 심하게 체한 날이었다. 야근하다 통증을 참고 퇴근한 짝꿍을 위해 약을 사서 마중 나갔고, 허리도 펴지 못하는 짝꿍을 부축해 집까지 데려왔다. 짝꿍이 눈을 감고 누워 있길래 잠든 줄 알고, 밀린 일을 하려 옆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그러자 짝꿍이 일어나 서운하다고 했다. 어떻게 괜찮냐고 한마디도 안 물어보냐고. 나는 정말 억울했다. 몇 주째 주말까지 일하며 쌓인 피로를 참고, 평소에도 짝꿍의 기분과 감정부터 살펴온 사람은 나였으니까. 서운하다는 짝꿍의 말이 되레 서운해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그제야 짝꿍은 나를 다독이며 힘든 걸 왜 말 안 했냐고, 앞으로는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은 내가 결혼 관계 안에서 감정을 숨기고 사랑을 주기만 하는 기둥 역할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서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부 둘만의 타원을 서로에게 기댄 채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하는 태도다. 마치 나에게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듯 힘듦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넓혀가는 모습 말이다. ⓒ챗GPT 생성 이미지

안희제는 이런 성별 각본에 기반한 관계의 대안을 '안전가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부부 둘만의 관계를 타원이라고 생각해보자. 이 원 안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만 바라보고, 원 바깥의 다른 관계는 그 원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모양을 제안한다. 두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댄 채, 각자 다른 방향의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이 모양에서는 부부가 여전히 서로에게 단단히 의지하면서도, 각자 바깥의 다른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 그 바깥 연결들, 그러니까 각자의 친구, 동료, 힘든 걸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러 겹으로 쌓일 때, 비로소 그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대신할 사람이 있어도 괜찮은 자리가 함께 생겨난다는 것이다. 결혼으로 안정된 자리 딱 하나만 만들려는 마음 밑바닥에는 사실 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깔려 있다. 그 공포를 없애는 방법은 성별 각본을 수행하여 그 자리를 더 단단히 다지는 게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자리를 여러 개로 늘려서 불안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짝꿍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봤다. "네가 힘들 때 내가 버텨줄게, 내가 힘들 때 네가 버텨줘"는 사실 안전가옥이 아니라 둘만으로 완결되는 타원을 짓겠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의 바깥 연결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짝꿍 외에 내가 솔직한 힘듦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리는 함께 활동해온 남성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요즘 일이 많아 지치네요. 평소답지 않게 짜증 낼 수도 있어요"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면, 돌아오는 답은 늘 "쉬엄쉬엄해요", "그럴 수 있어요"였다. 이 짧은 말들과 그 관계들이 그동안 짝꿍과의 관계 바깥에서 나를 지탱해온 안전가옥의 일부였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남성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많은 남성들이 연인 한 사람에게만 힘듦을 의지하다가 그 관계가 흔들리면 기댈 곳 없이 무너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둘만의 타원을 서로에게 기댄 채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하는 태도다. 마치 나에게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듯 힘듦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넓혀가는 모습 말이다. 곁에 있는 남성 친구가 힘들다고, 짜증 난다고 말하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쉬엄쉬엄해"라고 먼저 말해주자. 이미 익숙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다시 한 번 일상을 점검해보자. 그대가 찾는 안전가옥은 배우자와 둘이서만 짓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안전가옥이 되어주는 이들이 함께 짓는 집이다.

김태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출처: 여성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4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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