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문 여는 식당, 사장이 주는 술의 정체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의 맥주실록] 넷플릭스 <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 속 맥주 이야기
자정이 되면 불이 켜지는 밥집이 있다. 도쿄 신주쿠, 골든가이라 불리는 좁은 뒷골목. 다른 가게들은 셔터를 내리고 하루를 접는 시간, 간판도 없는 그 식당에는 그제야 사람들이 들어선다.
문을 닫는 시각은 오전 7시.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문밖에 걸린 포렴에는 '메시야'(めしや), 우리말로 그냥 '밥집'이 쓰여 있다. 메뉴도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하나와 맥주, 소주, 정종이 전부다.
대신 '마스타'라 불리는 주인은 재료만 있으면 손님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준다. 다만 술은 세 병까지. 그 이상은 팔지 않는다. 이런 가게에 손님이 있을까 싶지만, 은근히 자리는 찬다.
밤을 벗 삼아 일하는 사람들, 스트리퍼, 게이 바의 마담, 문신을 감춘 사내, 배달을 마치고 온 사람, 첫 차를 기다리는 사람 등 낮의 세계에서라면 한자리에 모일 일이 없었을 이들이 카운터에 나란히 앉는다. 그들은 서로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마스타가 만들어준 음식과 맥주 한잔을 하며 상대를 따스하게 맞아줄 뿐.
넷플릭스 시리즈 <심야식당>. 현재 한국에서는 시즌4, 5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는 신주쿠 작은 식당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원작은 2006년 시작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아베 야로의 만화로, 2009년 첫 드라마 이후 여러 시즌과 두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내가 본 넷플릭스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는 새로 제작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이전 시리즈를 그대로 이어받은 시즌이다. 감독도 배우도 첫 드라마 이후 줄곧 변함이 없다.
밤에만 운영하는 이 식당의 배경은 화려한 신주쿠 뒷골목 골든가이(ゴールデン街)라는 지역이다. 전후 암시장이었던 이곳은 서너 평짜리 낮은 목조 건물 가게 200여 곳이 성냥갑처럼 붙어 있어 좁은 식당 골목을 이루고 있다.
1960, 1970년대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였고, 1980년대 재개발 광풍으로 야쿠자들의 협박과 방화로 사라질 뻔했지만 상인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 흔적을 살려냈다. 현재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도쿄의 밤 문화를 밝히고 있다.
드라마는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우리말로 '다찌'라고 불리는 'ㄷ' 모양의 카운터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에 흉터가 있는 마스타는 손님이 원하는 요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다.
줄거리는 소소하지만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따스하게 흘러간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한 주인공의 복수나 극단적인 갈등은 기대하지 말자. 긴장을 풀고 잔잔한 마음으로 관전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모든 에피소드가 완결된 형태를 띠고 있어 연달아 볼 필요도 없다.
여기까지 보면 내가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솔직히 나의 취향은 소위 '일드'와 맞지 않는다. 일본 배우들 특유의 과장은 볼 때마다 어색하고 한 장면에 여럿이 길게 주고받는 대사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의 두 시즌을 모두 봤다. 흡인력이 뛰어난 작품은 아닌지라 가끔 띄엄띄엄 핸드폰을 열었지만, 기어이 모든 에피소드를 감상하고 말았다. 특별할 줄 알았던 마지막 회도 별일 없이 마무리됐다. 마스타의 정체가 밝혀지지도, '밥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취향에도 맞지 않는 드라마를 난 왜 놓지 못했던 것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심야식당 : 도쿄스토리> 예고편의 한 장면.
그는 말이 없다. 조언하지도, 훈계하지도, 등을 두드려 주지도 않는다. 음식을 만들고 그저 들을 뿐이다. 솜씨는 좋지만 내놓는 음식이 대단하지도 않다. 다만, 모든 음식에는 그의 정성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사람들은 그 소소한 요리에 '맛있다'를 연발한다. 그는 말 대신 따뜻한 접시로 모든 대답을 하는 존재였다. 괴로운 일로 아파하는 이에게 말없이 술 한 잔을 따라주고, 매장을 닫을라 쳐도 누군가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다가오면 기꺼이 다시 불을 켜는 사람이었다.
마스타에게는 이름이 없다. 과거도 베일에 싸여있다. 왼쪽 눈 위에 흉터가 하나 있는데, 무슨 일로 생긴 것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가 손님들의 사연을 묻지 않고 묵묵히 요리와 맥주를 내어주는 이유도 자신 역시 말 못 할 상처와 지우고 싶은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테다.
모두가 하루를 마감하고 불을 끄는 밤, 홀로 문을 여는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낮고 소외된 자들에게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고, 작게나마 위로 받을 수 있는 틈을 마련해 주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 마스타에게 점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맥주를 만들고 매일 손님들을 상대하며 하루를 보낸다. 작가, 강연자, 협회장 같은 타이틀이 있지만, 나의 본업은 결국 매장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내 맥주와 음식을 내어주는 것이다.
넉살 좋게 손님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성격이라면 좋으련만, 천성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거나 마주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매일 접객을 해야 하는 사람치고 외향적이거나 활달하지 못한 성격이란 의미다.
대신 나는 마스타처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맥주로 진심을 전하고 싶어 한다. 그의 밥집처럼 내 맥줏집에서 사람들이 맥주로 행복을 느끼고 위로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들었다. 아마 그래서 마스타에게 내 모습을 투영했던 것 같다. 이런 공감대가 평상시라면 별로 관심 없었을 일본 드라마를 두 시즌 동안 꿋꿋이 봤던 동력이 되었으리라.
<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일본 음식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나를 정말 궁금하게 만들었던 녀석은 맥주였다. 거의 매회 나오면서도 결코 라벨을 보여주는 법이 없었다. 저 맥주가 무엇일까? 설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숨길 셈인가?
심야식당 카운터에 앉은 사람들의 음식 옆에는 어김없이 술이 놓여 있었다. 소주와 사케도 종종 보이지만, 주인공은 633미리 갈색 병맥주였다. 진심으로 이 맥주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다섯 번째 시즌 최종회를 앞두고서야 맥주 라벨이 살짝 보이는 게 아닌가.
화면을 잠시 정지한 후 한참을 들여다보니, 맥주 라벨 모양과 이름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아치를 그리는 크림색 라벨에 어두운 테두리, 위쪽 곡선을 따라 작은 글씨가 흐르고, 가운데 박혀 있는 꽃문양 밑으로 이름이 보였다.
'나데시코 맥주(Nadeshiko Beer)'.
나데시코(撫子)는 '패랭이꽃', 그중에서도 우리가 '술패랭이꽃'이라 부르는 종이다. 한국 패랭이꽃과 달리 꽃잎 끝이 실처럼 가늘고 깊게 갈라져 있다. 보통 '야마토 나데시코'라고 불린다. 라벨에 오얏꽃처럼 보이는 꽃문양도 나데시코를 상징한 것이었다.
술패랭이꽃은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꽃잎을 피워낸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나데시코는 겉은 수수하고 가녀리지만 속은 강인하고 심지가 곧은 일본 여성상을 의미한다.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의 별칭이 바로 '나데시코 재팬'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전체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대표님은 피파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나데시코를 다시 국민들 마음속에 위로와 불굴의 상징으로 각인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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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아는 순간, 간판 없는 심야식당의 맥주 이름이 왜 나데시코인지 깨달았다. 마스타가 건네는 맥주는 생명력이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도쿄의 주류 사회의 인물들이 아닌 상처 입고 소외된 이들이다. 그렇지만 심야식당 손님들은 비루하거나 처절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하루를 기꺼이 털어버린다.
나데시코 맥주는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척박한 일상을 유쾌하게 버텨내는 모든 소시민을 위한 헌사다. 바위나 아스팔트 틈에서도 쨍하게 피어나는 패랭이꽃처럼 심야식당은 슬픔을 곱씹는 대신 왁자지껄한 온기로 신주쿠의 밤을 채우고 있었다.
홀로 즐기는 독주와 달리, 맥주는 곁에 앉은 이웃과 잔을 부딪칠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동료나 친구들과 나누는 맥주 한 잔이 내일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늘 밤, 당신의 그 잔에도 명랑한 패랭이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를.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