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이중근 VS 메리츠 조정호… 법정으로 간 ‘회장님’들의 조망권 분쟁

공사중지 가처분, 행정소송, 현장검증 공방 등 치열한 소송전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남동 부촌 일대. 가운데 방진망이 설치된 건물이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자택 공사 현장이다. 박해윤 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0번지 일대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촌 중의 부촌’이다. 남산 자락을 등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11년째 전국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1위 자리를 지켜온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자택(올해 공시가격 313억5000만 원)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등 재계 총수와 오너 일가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남산과 한강은 물론 멀리 롯데월드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입지인 만큼 이곳에선 주택의 규모나 입지 못지않게 ‘조망권’이 중요한 가치로 꼽힌다.
서울서부지법, 이 회장 측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기각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주택(왼쪽)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자택 공사 현장. 지호영 기자
최근 이 동네의 풍경이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더 크고 새로운 집을 짓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곳곳에 신축과 개보수가 진행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조망권을 놓고 법정에서 맞붙었다. 두 사람의 자택은 작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앞뒷집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보면 조 회장의 신축 주택이 앞쪽, 이 회장의 자택이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조 회장의 집이 완공되면 이 회장 측이 바라보던 한강 조망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분쟁의 출발점이다.
이중근 회장은 1994년 한남동 부지를 매입한 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을 지어 거주해왔다. 2015년에는 자택 바로 옆 부지를 추가로 사들였다. 해당 주택의 공시가격은 약 112억5000만 원이다. 특히 이 회장의 한남동 부동산은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몸집을 키웠다. 부영그룹 계열사 부영주택이 2023년 6월 이 회장 자택 뒤편,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 남서쪽에 자리한 주차장 부지와 주차시설 1만1306㎡를 2223억 원에 매입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인접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소유의 한남동 단독주택 약 1104㎡도 255억 원에 사들였다. 자택을 중심으로 주변 토지를 하나씩 확보해온 셈이다. 이 회장 자택 뒤편 일대가 사실상 ‘부영타운’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조정호 회장 역시 1992년부터 보유해온 한남동 주택 부지에 2022년 용산구로부터 인접 도로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토지를 합쳤다. 이 부지에 지하 2층~지상 2층, 연면적 약 2014.19㎡ 규모의 대형 단독주택 공사를 시작해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조망권 분쟁 중인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왼쪽)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뉴스1
조 회장 자택 신축 공사가 시작되자 이 회장은 조망권 침해를 이유로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에 공사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 주택이 들어서면 이 회장 측 조망이 일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 회장 측 인접 토지가 현재 나대지인 점, 조 회장 역시 자신의 토지에 건물을 지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이미 골조공사가 완료된 상황에서 공사를 중단할 경우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신청을 기각했다. 이 회장은 이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고,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심리 중이다.
이와 별개로 이 회장은 6월 용산구청장을 상대로 건축허가 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8월에는 건축허가 처분의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조 회장 부지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건축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라 건물 높이와 층수에 제한을 받는다. 이 회장 측은 상당한 경사지인 해당 부지에 불법 성토를 해 지표면을 인위적으로 높였고, 높이 산정에서 제외되는 승강기탑을 활용해 건축 규모를 사실상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용산구청 측은 건축허가 과정에 위법한 요소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용산구청 관계자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아꼈다.
이중근 회장, 이명회 총괄회장과도 조망권 분쟁
이 회장 측은 9월 10일 집행정지 심문에서 현장검증도 신청했다. 실제 현장을 확인하면 건축허가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가의 위법성을 다투는 부분은 본안 사건에서 증거를 통해 판단할 사안이며,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집행정지 사건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 회장은 2009년에도 맞은편 부지에서 주택을 신축하던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을 상대로 공사중지 가처분을 신청해 인용된 바 있다. 당시 신세계 측이 건물 높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계획을 조정하면서 갈등이 마무리됐다. 한남동에서 또다시 불거진 ‘회장님들의 조망권 전쟁’, 이번에는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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