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의 변호사비> ⑤부정 선거, 언론 공격 다 된다... '원고 소송' 정치자금 추적

국회의원들은 변호사 선임 비용을 정치자금에서 꺼내 쓰곤 한다. 물론 늘 공익적인 목적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개인의 비리 혐의를 방어하는 데 정치자금이 쓰이기도 한다. 선관위는 유죄가 확정되면 이 돈을 반환받는다는 방침이지만, 취재 결과 반환되지 않은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8월 25일부터 연속 보도하는 '의원님의 변호사비' 기획을 통해 정치자금이 국회의원 개인의 방패로 쓰이는 실태와 선관위의 관리 부실, 법과 시스템의 미비, 감시를 가로막는 정보공개제도 등 정치자금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국회의원이 직접 원고가 돼 제기하는 소송은 패소를 하더라도 정치자금으로 쓴 소송 비용은 돌려줄 필요가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국회의원이 제기하는 소송은 승패를 불문하고 '의정 활동의 일환'으로 보고 있어서다.
국회의원이 제기하는 소송에는 그만큼 정치자금 지출이 대폭 열려있는 셈이다. 하지만 패소에 따른 책임도 사실상 없다 보니, 정치자금을 동원한 소송 남발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경욱, 정치자금 털어 '부정선거' 주장에 선거무효소송까지 제기
민경욱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인천 연수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무효 소송을 냈다. 낙선 이후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까지 불과 한 달여 동안, 민 전 의원이 투표함 보전신청과 변호사 착수금 등에 쓴 정치자금은 7,300만 원에 달했다.
2022년 대법원은 "부정선거는 없었다"며 민 전 의원의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민 전 의원이 원고로서 제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 정치자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됐다. 선관위가 이를 정치활동에 소요되는 자금이라고 폭넓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해당 정치자금이 반환됐거나 반환될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 취재진에게 "낙선한 선거에 대해 선거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자기 연관성이 있는 선거이기 때문에 본인 정치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민 전 의원은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들었다. 당시 정치자금 계좌에 남아있던 돈에서 적법하게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해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과 국회의원 '원고 소송'... 뉴스타파, 실태 조사
국회의원이 정치자금에서 변호사비를 지출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회의원이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거나 민사소송의 피고가 될 때,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이 다른 사람을 고소·고발하거나 민사소송의 원고가 될 때다. 쉽게 전자는 방어, 후자는 공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방어 목적의 변호사비는 유죄가 확정되거나 패소하면 반환해야 한다. 민사 재판에서 피고가 돼 패소했을 때 역시 변호사비로 쓰인 정치자금은 반환해야 한다. 하지만 공격 목적, 즉 국회의원이 직접 제기한 소송의 비용은 다르다. 이때는 국회의원이 소송 끝에 패소하거나, 고소·고발 사건이 무혐의로 끝나도 정치자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써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적인 소송임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회의원이 원고로 제기하는 소송에 변호사비를 사용하는 데는 사실상 아무런 제약이 없다. '의정 활동'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이 역시 폭넓게 인정된다. 즉 원고로서 제기하는 소송에는 정치자금 지출이 대폭 열려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원고 소송을 폭넓게 열어두는 게 부작용 없이 작동하고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원고로 제기하는 소송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민 전 의원 사례처럼 이 규정이 합리적인지 되묻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뉴스타파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10년간 국회의원들이 원고가 돼 벌인 소송을 조사했다.
국회의원이 제기하는 소송에는 정치자금 지출이 폭넓게 인정된다.
패소해도 반환 의무 없어... 정치자금, 비판 언론 겨냥 소송 비용으로 활용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앞서 곽 전 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에 대해 배후설·타살설을 주장했다가, 언론으로부터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곽 전 의원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전부 패소였다. 그는 이 소송에 정치자금 330만 원을 썼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전 의원의 사례도 있다. 2015년 문화일보는 '민생 법안이 김기식 의원에게 발목 잡혔다'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 김 전 의원은 입법 지연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 있다며 문화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사태의 원인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기사가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김 전 의원의 패소였다. 그는 이 소송에 정치자금 2,200만 원을 지출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던 김용태 전 의원 역시 비슷한 사례다. 2019년 김 전 의원은 자신이 당협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며 시민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 결과는 패소였다. 법원은 국회의원이 통상의 공직자보다 더 폭넓은 발언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에 대한 비판도 더 폭넓게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송에 김 전 의원은 정치자금 330만 원을 썼다.
정치적 경쟁자 향한 소송 비용, 패소 비용까지 정치자금에서 지출
이처럼 국회의원이 원고로 제기하는 소송의 경우 소송 결과에 상관 없이 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패소하거나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결정이 내려질 때, 심지어 소를 제기하고 취하하는 경우에도 정치자금 지출에는 어떠한 제재가 없다.
무소속 김병기 의원은 지난 2024년 총선 당시, 배우자 관련 의혹 제기를 했던 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국힘의힘 장진영 후보, 이를 보도한 언론사 기자 등을 고소했다. 하지만 총선 직후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소를 취하했는데, 여기에 정치자금 1,100만 원을 지출했다.
심지어 정치자금으로 진행한 원고 소송에서 진 뒤, 패소 비용까지 정치자금에서 지출한 정황도 확인됐다.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이찬열 전 의원은 2016년 자신을 풍자한 만화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만화를 게재한 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전 의원은 여기에 먼저 정치자금 500만 원을 썼다. 하지만 청구는 기각됐고, 법원은 소송 과정에서 소송 비용을 이 전 의원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 직후, 이 전 의원은 정치자금에서 약 480만 원을 꺼내 해당 사건 상대방 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에 지급했다. 패소 비용까지 정치자금에서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소송 비용으로 남발되는 정치자금, 지출 제한 장치 필요… "패소 시 반환 받아야"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도 '패소 시 반환' 등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욱 전 의원 사례를 제외하면, 국회의원이 원고로 제기하는 소송은 주로 자신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이나 의혹 제기를 하는 정치적 경쟁 상대를 향한다. 원고로서 제기한 소송이 패소해도 정치자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관위 지침이, 비판 언론 등을 향한 소송 남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자금으로 소송비용을 지출했을 경우에는 아무래도 보다 손쉽게 소송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특정 언론사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일단 소송부터 걸고 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건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의원들이 패소했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소송을 제기할 법적 근거가 빈약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비판 언론 등을 향한 소송에 정치자금이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의원들이 원고로서 제기한 소송 역시 피고인·피고 신분으로 진행한 소송과 마찬가지로 패소 시 정치자금을 반환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패소했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소송, 즉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지 않는 억지 소송을 했다는 의미"라며 "그렇다면 반납을 받는 게 기준의 일관성 측면에서 맞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유·무죄를 기준으로 본다면, 소송에서 정치인이 패소했을 경우도 반납받는 게 일관된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의원들이 정치자금에서 지출하는 변호사비에 한도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준우 변호사(민변 사무총장)는 "그 비용을 쓴 게 어쨌든 의정활동의 일환이라고 보면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비용의 상한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사든 형사든 행정소송이든, 한 건에 지출할 수 있는 비용의 상한을 두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며 "필요하면 자기 돈을 쓰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