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하향 평준화 [편집장 레터]

주식의 시대입니다. 증권사와 운용사는 신났습니다. 증권사는 거래 수수료를 챙기고 운용사는 고객자산을 굴리며 돈을 법니다. 고객이 맡긴 자금이 늘어날수록 수익은 불어납니다.
펀드매니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들의 성적은 숫자로 정확하게 평가받으니까요. 매니저는 ‘시장’보다 잘 운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코스피지수가 10% 올랐다면 본인이 운용한 펀드 수익률이 적어도 10%는 넘어야 합니다. 종목 선정을 잘하거나, 매수·매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겠죠. 시장보다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알파(초과 수익)’를 크게 냈다고 표현하는데요. 매니저는 이 초과 수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려운 투자 얘기를 꺼낸 이유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때문입니다. 저는 김 장관이 ‘초과 이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길래, 0.1%라도 수익률을 더 높이려 애쓰는 펀드매니저의 땀방울을 떠올렸습니다. 김 장관이 말한 초과 이익 개념은 다를 겁니다. 아마도 1950년대 스웨덴 노총이 언급한 ‘사회연대임금’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 모델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핵심입니다. 당시 엄청난 이익을 낸 볼보나 에릭슨이 타깃이었죠.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해도 같은 업종 노동자에게 기업 규모나 이익률과 관계없이 유사한 임금 수준을 적용합니다.
이 모델은 1990년대 초반 폐기됐습니다. 사기업 이익을 통제하니 인재를 유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성과를 크게 낸 고성과자들이 떠나갔습니다. 기업 경쟁력은 떨어졌고 노조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AI가 주도하는 지금은 더 안 맞는 모델인 거죠.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의 뒷맛이 씁쓸합니다. 저를 포함한 국민 대대수가 그럴 겁니다. 천문학적인 실적이 메모리 반도체 정규직 노동자만의 공로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협력사 노고를 감안하지 않는 노조 행태는 실망스럽기까지 했죠. 이번 성과급 논란은 한국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겼습니다.
그렇다고 대기업 이익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자는 김 장관 주장은 더욱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초과 이윤’ 개념부터 모호하고요. 앞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발언이 구설에 올랐죠.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초과 세수라고 정리했는데, 김 장관이 다시 초과 이익을 들고 나선 겁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 초과 이익을 나누자는 건 치열한 인재 전쟁을 포기하고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기업 덕분에 크게 늘어난 세금을 어떻게 잘 사용할지 초점을 맞추는 게 옳습니다. 국민을 위해, 또 미래 한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밤새며 고민해야겠죠.
한 가지 더. 분배를 논하기에는 글로벌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습니다. 자원 없는 작은 나라, 한국에 ‘경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은 저 앞에 있고 중국은 턱밑까지 쫓아왔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삼전닉스’의 막대한 이익과 성과급 갈등, 노동부 수장의 ‘초과 이익’ 발언에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정부가 앞장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하향 평준화시키자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