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도 성과급? 반도체 호황이 불러온 N% 성과급 시대

반도체 호황이 불러온 N% 성과급 시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성과급이 국내 산업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 삼성전자는 10.5%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직원 한 명당 수억 원의 성과급이 지급되자 다른 대기업은 물론 하청업체까지 성과급으로 영업이익을 나누자고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올해 3월 본격 시행된 ‘노란봉투법’이 있다. 시행 전에는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문제로만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었다. 비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성과급이 근로조건인지 아니면 경영상의 결정인지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법 시행 이후에는 근로조건 외에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의 결정에 대해서도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성과급이 불러온 역대급 노동쟁의 현장이 나타나고 있다. 파운드리, 성과급 탓에 흑자전환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성과급의 주 대상인 DS부문과 다른 사업부 간의 성과급 격차가 최대 100배에 달한다. 메모리사업부의 경우 평균 6억 원에 육박하는 자사주를 받지만 DX부문 임직원은 600만 원 상당을 받는 데 그친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과거 스마트폰 실적이 좋았을 때는 DX부문이 삼성전자 실적을 견인했는데 영업이익의 일부를 달라는 주장은 못했다”며 “신설 성과급의 지급 기준이 DS부문의 경우 매년 영업이익 200조 원 달성인데, 같은 기준이 DX에도 적용된다면 당분간 성과급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대 수혜처인 DS부문 내에서도 잡음은 흘러나온다. 메모리사업부가 최대 6억 원을 받는 반면, 비메모리 사업부는 약 2억 원 수준에 그쳐 성과급 격차가 3배에 달하면서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은 재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가 한국 대기업 성과급 체계를 표준화한 곳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는 ‘초과이익분배금’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이 연초에 설정한 이익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그 초과분의 일부를 임직원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후 대부분의 대기업은 이 제도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책정했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기 시작하자 다른 기업 노조들도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 카카오, LG유플러스 등 일부 대기업 노조는 이미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한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경우 2000년대 초반 회사가 어려운 시절 노조가 임금을 동결해 가며 버텨준 역사가 있어 영업이익 일정 비율 성과급 지급의 명분이 있다”며 “반면 삼성전자는 지속적으로 이익이 나는 사업부에는 임금인상과 성과급을 지급해 왔는데도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자 다른 회사 노조들도 성과급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과급 요구 분위기는 대기업의 하청업체로도 확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부품을 운반하는 하청업체 피앤에스로지스 노조는 원청을 대상으로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초과 이익분에 대해 협력사 직원을 대상으로 인당 500만~600만 원을 지급하는 상생장려금 제도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원청과 성과급의 차이가 커지자 SK하이닉스에 성과급 차별을 중단하라며 4월 30일 직접교섭 요구안을 전달했다.
하청 노조는 원청과의 동등한 대우를 주장하는데,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하청 노조도 성과급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원청 기업이 천문학적 이익을 낸 배경에는 하청 업체 근로자들의 기여가 있다”며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원청에 직접 성과급이나 이익 배분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