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로 내몰린 김승원…'검사 한동훈' 빛났지만 '팀 한동훈'은 없었다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흩어진 의혹 엮어 '오빠 카르텔' 띄워…'어젠다 세팅' 넘어 '어젠다 키핑'까지
우군이 없다…與는 자료 출처 고리로 역공, 장동혁은 "오빠 강조, 본질 흐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홀로 적진에 뛰어든 조자룡처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권의 방어진을 휘젓고 있다. 파편처럼 마구 흩어져 있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로비 의혹과 기소유예 처분을 하나의 사건으로 엮고, 여기에 '민주당 오빠 카르텔'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야권의 포화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게 집중되던 순간, 말머리를 돌려 김 후보자를 새로운 낙마 대상으로 끌어낸 것도 그다. 민주당 대표가 직접 전장에 나서야 할 만큼 그의 돌격은 거셌다.
하지만 한 의원이 적진을 헤집고 돌아봤을 때 뒤따르는 우군은 거의 없었다. 제갈공명처럼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책사'도, 흐트러진 여권의 틈을 더 벌려 결정타를 날려줄 '지원군'도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한 의원이 열어젖힌 전선에 올라타지 않았고, 원내 친한계마저 단일대오 공격 스크럼을 짜지 않았다. 결국 적진을 흔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성문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전투에서는 빛났지만 전쟁에서는 고립된 모습이다. 김 후보자를 벼랑 끝 궁지로 몰고도 낙마라는 마지막 깃발을 꽂지 못한 한 의원의 현주소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9월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들어서다 취재진과 만나 연일 제기하고 있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SNS 65%가 '김승원'…여론 주목 끌어내
한 의원이 선택한 전장은 인사청문회장이 아니라 페이스북이었다. 김승원·용혜인 후보자가 지명된 8월30일부터 9월10일 오전 11시까지 한 의원이 올린 게시물은 모두 259건이다. 이 가운데 김 후보자의 이름이 직접 등장한 글만 144건으로 전체의 55.6%를 차지했다.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 절반 이상이 김 후보자를 향한 공격으로 채워진 셈이다.
김 후보자의 이름을 감춘 화살까지 세면 집중도는 더 높아진다. 제넨셀과 브로커 양수진씨, 식약처 청탁 등 관련 의혹을 다룬 글과 두 후보자를 함께 언급한 게시물을 합치면 169건, 전체의 65.3%다. 게시물 세 건 가운데 두 건이 사실상 김 후보자를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산발적으로 화살을 날린 게 아니었다. 표적이 흔들릴 때까지 같은 지점을 거듭 겨냥했다.
한 의원은 먼저 김 후보자와 양씨 사이의 대화를 반복해서 끄집어냈다. 여기에 제넨셀의 임상시험 승인과 국고 지원 문제, 식약처 청탁 의혹, 사건의 기소유예 처분을 차례로 이어붙였다. 각각 흩어져 있던 의혹이 그의 페이스북을 거치면서 정치인과 브로커, 기업과 국가기관이 얽힌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됐다. 검사 한동훈이 가장 잘하던 방식이었다. 파편을 모아 사건의 얼개를 만들고, 상대의 해명에서 다시 공격할 틈을 찾아냈다.
당초 야권의 낙마 1순위로 꼽힌 인물은 용 후보자였다. 각종 특혜와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지면서 야당의 화력도 용 후보자에게 집중되는 흐름이었다. 한 의원은 그 흐름을 김 후보자 쪽으로 단숨에 돌려냈다. 의혹을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의제로 만들어내는 '어젠다 세팅'에 그치지 않고, 여권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국민적 관심이 이어지게 하는 '어젠다 키핑'까지 해냈다. 김 후보자를 인사청문 정국의 한복판으로 끌어낸 공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 의원이 찌른 곳이 여권의 급소였다는 사실은 김민석 민주당 대표의 반응에서 드러났다. 평소 점잖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대표는 한 의원을 향해 '관종'이라는 표현까지 꺼냈다. 본회의장에서는 노트에 '한동훈 아웃'이라고 적었다. 한 의원의 공세가 허공을 가른 칼이었다면 집권당 대표가 직접 전장으로 내려올 이유도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반격에 나서면서 김 후보자의 의혹을 둘러싼 검증전은 '한동훈 대 민주당'의 충돌로 바뀌었다. 민주당은 의혹의 실체보다 한 의원의 거친 표현과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 후보자를 향하던 시선도 한 의원에게 분산됐다. 한 의원이 전장을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커진 전선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한 의원의 1차 돌격에 맞춰 2차 공세를 펼쳤다면 전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조자룡이 적진을 헤집어 대오를 무너뜨린 뒤 제갈공명이 불을 놓고 우군이 퇴로를 막는 식의 협공이다. 한 의원이 의혹의 실마리를 던지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요 회의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를 이어받았다면 김 후보자를 향한 압박은 훨씬 강해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민주당도 이를 한 의원 개인의 정치 공세로 몰아가기 어려웠을 터다.
그러나 한 의원의 돌격 뒤에는 후속 부대가 붙지 않았다. 여권이 화살을 돌렸지만 이를 나눠 맞을 동료는 없었다. 국민의힘은 멀찍이서 전황을 지켜봤고 한 의원은 혼자 공격하고 혼자 반격을 견뎠다.
"팀플 했다면 복당 징검다리 놓았을 수도"
결국 한 의원은 이번에도 혼자였다. 자신이 의혹을 찾고, 자신이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민주당의 반격까지 받아냈다. '검사 한동훈'의 수사력은 빛났지만 '정치인 한동훈'의 조직력은 보이지 않았다. 한 의원이 선두에서 돌파하는 법은 알았지만 동료들을 같은 대오에 세우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국민의힘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 의원에게도 이번 공방은 당과의 관계를 복원할 기회였다. 박정훈·진종오·한지아 의원 등 원내 친한계 인사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면 '팀 한동훈'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를 치르듯 각자 역할을 나눠 한 전선에서 움직였다면 개인의 돌격이 친한계 전체의 정치적 재기 무대로 확장될 수 있었다.
중진 의원들을 끌어들일 여지도 충분했다. 장관 후보자 검증은 야당 의원들이 존재감과 전투력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 의원이 마이크와 성과를 나눴다면 김 후보자 공세에 합류할 의원도 적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자신의 포럼에 한 의원을 참여시켰던 김기현 의원 등을 자신의 전장으로 불러들였다면 복당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한 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내부의 시선도 묘하다. 공동의 표적을 겨눴다고 해서 한 의원과 당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조광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한 의원은 합창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독창회를 많이 하면 된다"며 "혼자 잘하는 독창과 조직이 함께하는 합창은 다르다"고 꼬집었다.
한 의원은 여권의 성문을 향해 돌격했지만 등 뒤에서도 화살을 맞았다. 민주당은 그를 '관종'으로 몰았고, 국민의힘에선 '특급 도우미'(박민영 미디어대변인), '서초동 편집국장'(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라는 조롱이 나왔다. 장동혁 대표마저 '오빠 로비'라는 표현이 의혹의 본질을 흐린다며 거리를 둔 가운데, 10일에는 국무총리실 과장이 신분을 감춘 채 한 의원에게 질문한 사실이 드러나 전선이 총리실까지 넓어졌다. 한 의원은 이를 '야당 의원 사찰'로 규정하며 한성숙 국무총리를 몰아붙였지만 당의 지원사격은 없었다. 여권을 흔들수록 당내에서는 더 고립되는, 홀로 적진을 누비는 조자룡의 처지가 선명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