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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노트/이한듬]베를린에서 마주한 '차이나 쇼크'

[기자노트/이한듬]베를린에서 마주한 '차이나 쇼크'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IT박람회 'IFA 2026'에 마련된 중국 TCL의 전시 부스. / 사진=이한듬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IT박람회 'IFA 2026'에 마련된 중국 TCL의 전시 부스. / 사진=이한듬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IT박람회 'IFA 2026'에 마련된 중국 TCL의 전시 부스. / 사진=이한듬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IFA 2026'은 최근 몇년간 눈에 띄게 달라진 중국 기업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장 입구부터 중국 기업들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전자와 미니LED TV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국 TCL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IFA의 메인 스폰서 자리를 꿰찼다.

전시장 안 상황은 중국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했다. TV와 생활가전은 물 인공지능(AI), 스마트홈,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 IFA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932곳. 지난해보다 약 200곳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IFA 2026 전체 참가 브랜드수가 190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이 중국 기업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IFA에서 만나는 중국 제품에는 묘한 선입견이 있었다.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나 디자인은 아직 한국이나 일본 기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식 탓이다.

어쩌다 괜찮은 제품이 눈에 띌 경우 '대륙의 실수'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을 베낀 '싸구려 저품질'로 악명 높은 중국 기업이 우연히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단순히 실수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중국 제품들은 한국 기업의 것과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TCL과 하이센스가 전시장 전면에 배치한 TV는 하드웨어적으로 삼성전자·LG전자 제품과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정도로 기술 수준이 높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샤오미의 휴머노이드 로봇 '샤오미 사이버원'은 사람의 손동작을 그대로 흉내내며 자연스럽게 손하트를 만들었다. 손가락 마디 마디의 관절의 움직임이 실제 사람의 손동작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러웠다.

무서운 것은 발전 속도다. 중국 기업들은 한두가지 제품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TV를 비롯한 일부 품목에서 시작된 가파른 상승 곡선이 가전 전반으로 확장하더니 이제는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아우른다. 차세대 시장을 선도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의 위협을 '가격 경쟁력이 무서운 나라'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국의 발전은 한국 산업이 일본을 추격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배우고 품질을 개선하면서 조금씩 격차를 좁혔다. 어느 순간에는 일본 기업과 같은 시장에 진입했고 조금씩 파이를 잠식하더니 마침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가전 명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의 움직임은 한국이 거쳐온 흐름과 닮아있다. 속도는 오히려 더 빠르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공급망, 막대한 생산능력에다 빠른 기술 상용화 능력이 결합하면서 추격의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더욱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 기업들이 이제 따라오는 기업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새로 만들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쌓아올린 기술력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는 없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다만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격차가 문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앞서 있다고 해서 내일도 앞선다는 보장은 없다.

산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경쟁자가 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경쟁자가 얼마나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지를 놓치는 것이다.

중국 제품은 아직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잡해 보였던 대륙의 실수가 이제는 전시장의 메인을 차지하고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 것이 베를린에서 마주한 현실이다.

몇 년 뒤에는 그 놀라움이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다. 15년 전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산업은 지금 새로운 추격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우리가 추격을 당하는 쪽이다. 중국의 약진을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허투루 봐서도 안 된다. 과거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던 그 절박함을 지금 중국이 품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선두를 지키려면 중국보다 한발 앞서 움직여야 한다. 베를린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단순히 한 번의 가전 전시회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 산업의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될지 묻는다면 어쩌면 그 답은 이미 IFA 전시장 한복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동행미디어 시대 https://n.news.naver.com/article/417/000115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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