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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의 긴 줄에 지쳤다면, 인생 국밥 같은 천생산으로 [느린 등산 구미 천생산]

명산의 긴 줄에 지쳤다면, 인생 국밥 같은 천생산으로 [느린 등산 구미 천생산]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놓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망대인 미덕암米德岩.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말의 등에 쌀을 부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여, 왜군이 산성에 식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해 포위 작전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놓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망대인 미덕암米德岩.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말의 등에 쌀을 부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여, 왜군이 산성에 식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해 포위 작전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천생산성 산림욕장~거북바위~정상~북문~남문~천생산성 산림욕장 5km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놓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망대인 미덕암米德岩.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말의 등에 쌀을 부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여, 왜군이 산성에 식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해 포위 작전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유명하지 않은 산의 맛이 있다. 명산은 늘어선 식당과 안내판이 시작부터 진을 빼놓는다. 등산객 무리에 섞여 함께 흘러가고, 함께 감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산행이 유명한 맛집의 긴 대기 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명성이 높으니, 별 다섯 개 후기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독촉을 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산은 편안하다. 아름다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숲,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침묵의 산. 살아 있는 풀 냄새와 닳지 않은 땅의 촉감, 생생한 바람이 아늑한 침대처럼 느껴지곤 한다. 골목 깊숙한 곳, 허름한 식당에서 기대 없이 주문한 국밥 한 그릇이 뜻밖의 인생 음식이 되는 것처럼, 구미의 천생산天生山이 바로 그런 맛을 내는 산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처럼 바위가 직각으로 솟은 구미 천생산. 산 입구의 저수지인 검성지 방면에서 테이블 같은 산세가 잘 드러난다

내 높이는 겨우 408m. 화려한 명산의 기준표를 들고 온 이들에게 나는 그저 동네 뒷산으로 보일 겁니다. 나지막하고 심심한 산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올수록 결코 가볍지 않은 반전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한국의 테이블 마운틴'이 내 별명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테이블처럼 솟은 거대한 산이 있지요. 내가 바로 그 모습을 닮았습니다. 낙동강 변에서 나를 바라보던 옛사람들은 내 능선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일一자로 뻗어 있다고 해서 '방티산'이라 불렀습니다. '방티'는 큰 대야를 뜻하는 이곳 사투리입니다.

천생산성 산림욕장의 유아숲 놀이시설. 주차장과 화장실, 휴게실이 있다. 백두대간을 일시종주한 성예진씨가 동행했다.

내 이름 안에도 본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나의 바위 능선은 거대한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른 듯, 천길 자연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옛 기록에도 '삼면의 석벽을 깎아 성을 만들어 놓은 듯한 것이 꼭 하늘이 만든 것 같다' 하여 '천생天生'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적혀 있지요.

지금 사람들은 나를 넓적한 테이블이나 방티로 보지만, 옛날에는 천혜의 요새로 보았습니다. 동쪽으로 치우친 좁은 틈 하나만 삼국지의 장비 같은 장수가 부릅뜬 눈으로 지키고 서 있다면, 1만 명의 군사로도 함락시킬 수 없는 험준한 바위 성채. 나는 그렇게 단단하고 깊은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산림욕장 방면에서 미덕암으로 이어진 산길의 '어린이 등산로' 안내판. 1,000m에 육박하는 높은 산에 비하면 산행이 쉽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찰 때쯤, '천생산성'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이 거친 돌벽은 삼국시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처음 쌓아 올린 이래, 수천 년의 시간을 버텨온 나의 뼈대이자 역사입니다. 마주 보는 영산 금오산과 함께 낙동강을 굽어보며, 나는 국난의 시기마다 백성들의 목숨을 내 품에 안아 지켜냈습니다.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왜적을 맞아 크게 격파했던 날의 함성이 여전히 내 바위 틈새에 서려 있습니다. 명나라 장군 유정이 왜군에게서 빼앗은 조총과 창, 화살 같은 무기들을 조선 시대까지 내 품 깊숙이 감추고 있었지요.

정상에서 본 미덕암. 구미시내와 낙동강, 맞은편 금오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1596년의 일이었습니다. 인동현감 이보를 시작으로 관찰사 이시발과 찰리사 곽재우가 내 몸 위에 외성을 더 쌓아 둘러친 둘레가 3,600척에 달했습니다. 군량을 지키던 별장과 승장들, 내 품에 서려 있던 장대와 군기고, 승려들이 머물던 건물들은 세월의 풍파에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성벽을 쌓던 그들의 땀방울은 돌 틈 사이에 흐르는 푸른 이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천생산성으로 이어진 계단. 산행 중 처음 시야가 트이는 곳이다.

사람이 허공에 뜨는 법을 알려 줄까요? 정상 부근의 넓은 바위 끝, 미덕암米德岩 위에 서면 끝없는 낭떠러지를 굽어보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구미 시내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장엄한 금오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여기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내가 견뎌온 역사의 격랑이 거친 바람이 되어 당신의 뺨을 스쳐 갈 겁니다.

정상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툭 튀어나온 전망바위인 미덕암은 압도적인 경치와 시원함으로 등산객을 맞는다. 멀리 금오산의 빛내림 현상이 신비롭다.

산길을 걸으면, 나는 당신에게 걸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건넬 겁니다. 한쪽으로는 아찔한 절벽 아래로 역동적인 구미 시내를, 다른 한쪽으로는 고요한 숲과 산성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낙동강의 활기찬 흐름과 쓰임새를 다한 산성의 잔해가 주는 평온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지요.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걸으면 북문에 닿기 전, 벤치가 있는 작은 전망터가 나온다.

나를 따라 걷는 길이 때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어떤 구간은 초록의 넝쿨이 길을 삼켜버린 곳도 있으니까요.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분히 한 발씩 디디면 누구든 갈 수 있는, 어렵지 않고 넉넉한 길이니까요. 서두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산성을 한 바퀴 다 돌아도 5km가 채 되지 않으니, 시계는 주머니 속에 넣어두어도 좋습니다.

제게 올 때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갈 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저 아래 두고 오세요. 남들이 쥐여 준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듯 타인의 기준을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맹렬한 도전과 압도적인 성취, 그리고 인증샷을 찍기 위한 분주함은 내 몫이 아닙니다.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침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산성을 따라 산림욕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찾는 이가 드물어 풀이 높지만 산길이 임도마냥 넓어 진행이 어렵지 않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만든 거대한 식탁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담는 대야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지키는 단단한 산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오롯이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자 하는 당신을 위한 고요하고 편안한 숲입니다.

명성과 상관없이, 속도를 줄여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음미할 줄 아는 당신의 곁에 늘 이렇게 서 있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어오세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느끼고 싶은 당신을, 내 오랜 바위 품으로 꼭 안아 주겠습니다.

- 천생산의 매력은 산성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산성 순환 코스에 있다. 들머리를 어디로 잡든지 산성을 도는 코스는 놓쳐서는 안 된다.

- 구미시 황상동 검성지(저수지)에서는 '테이블 마운틴'을 닮은 천생산의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다. 검성지를 기점으로 원점회귀 산행 가능하며 7km, 3~4시간 걸린다.

- 대표적인 기점은 검성지, 산림욕장, 쌍용사 방면이 있다. 정상 기준 서쪽, 남쪽, 동쪽에서 접근하는 코스이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른 경우 차량 회수 시 택시비가 적지 않게 나오므로 차를 세운 곳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 검성지 방면은 산행을 좀 더 길게 할 수 있고, 테이블을 닮은 산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림욕장 방면은 유아숲 놀이시설이 있어 자녀와 함께하는 코스로 알맞다. 쌍용사 방면은 산성까지 최단코스로 오를 수 있다.

- 테이블처럼 융기한 바위능선은 1km이고. 남문에서 북문까지가 산성 구역이다. 능선을 따라 걷고 북문에서 산성 아래 둘레를 따라 다시 걷는 것을 추천한다. 성벽 아래 길도 운치 있다. 산길은 임도처럼 너른 데 반해 풀이 높으므로 반바지는 피해야 한다.

- 북문에서 테이블 마운틴 북쪽 구간은 편도로 다녀오는 것이 효율적이다. 벼랑 능선 따라 갔다가 벼랑이 끝나는 곳에서 되돌아서 북문으로 돌아오는 것이 코스를 잡기에 더 효율적이다.

- 쌍용사는 구미시 장천면에 있어 시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300m만 오르면 북문에 닿을 수 있다.

- 정상에는 구미 산악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제단과 대형 표지석이 있다. 100m 거리에 벼랑바위 전망대인 미덕암이 있다.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므로 충분히 기념사진을 찍고 경치를 음미하는 것이 좋다.

- 산길이 복잡하게 나있다. 산행 경로와 현 위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이정표를 참고해야 한다.

- 비교적 쉽고, 경치가 탁월한 산이므로 여유롭게 즐기며 산행하는 것이 좋다.

천생산성 산림욕장과 쌍용사 방면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구미역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황상현대아파트 앞에서 하차해, 북쪽 골목을 따라 300m 가면 '구미 황상동 고분군'이 나온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산행하면 천생산성까지 갈 수 있다. 하산은 구평동 구평부영아파트 방면으로 내려와서 187번 버스를 타면 구미역에 닿는다. 구미역은 KTX가 정차하지 않는다. KTX가 정차하는 김천역에서 검성저수지까지 택시로 34km이며, 50분 걸리며 4만~5만 원 정도 나온다. 김천역에서 500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구미종합터미널에서 하차 후, 택시를 타면 검성저수지까지 15km에 1만 8,000원 정도 나온다.

천생산 아래 구미 시내에 식당이 즐비하다. 교동면옥 인동점(471-4222)은 소고기 육전을 첨가한 진주식 냉면(1만 원)이 시원하다. 특냉면은 육전에 명태회무침이 들어 있어 매콤한 맛을 낸다. 넓은 주차장을 갖췄다. 구미임가네낙지보쌈(0507-1435-5256)은 직화낙지볶음(1만2,000원), 수육과 낙지볶음이 함께 나오는 임가네한상(1만7,000원)이 먹을 만하다. 순수가성(475-8533)은 브레이크타임 없이 24시간 영업하는 한식당이다. 돌솥밥이 기본으로 나오는 순두부(1만 원)가 대표 메뉴.

출처: 월간 산 https://n.news.naver.com/article/094/000001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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