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배웅 [이문재의 발견]
매주 이문재 시인이 벼려낸 성찰의 화두를 독자 여러분과 나눕니다. 속도보다 여유를, 기계보다 사람을, 사람보다 생명과 환경을 향하는 시인 이문재의 깊은 발견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쯤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시작 노트’까지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장송, 낯선 이와도 손잡고 배웅하는 일
매번 낯설고 서툴기만 한 이쪽의 배웅이
위 시를 지면에 싣기 전에 몇몇 벗에게 보여줬더니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얼마 전 입적하신 스님을 떠올렸고, 누구는 10·26 다음 날 아침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생각났다고 했다. 네팔 대홍수로 스러져간 ‘죄 없는 사람들’을 애도하게 된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장송곡은 가장 느린 행진곡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피아노 연주자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장례, 즉 애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행진’인 것이다. 뒤따르는 행렬이 없는 죽음처럼 쓸쓸한 죽음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는 누군가 마중하는 가운데 태어나고, 또 누군가 배웅하는 가운데 떠난다. 마중과 배웅, 배웅과 마중의 연속이 우리의 실존적 삶이다. 제대로 맞이하고 제대로 떠나보내는 일,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핵심 의례다.
오랜 외우(畏友) 배병삼 교수가 일찍이 글로 쓴 바 있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알려면 그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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