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 노숙인을 모른다”
![작년 12월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를 요구하며 진행된 ‘2025 홈리스 추모제’. [홈리스행동 제공]](/static/uploads/rss_27c058c63cc5f820.jpg)
[죽음을, 삶을, 아니 죽음과 삶을] 살 만한 곳과 살게 하는 돌봄
작년 12월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를 요구하며 진행된 ‘2025 홈리스 추모제’. [홈리스행동 제공]
홈리스에게 없는 것, 과도하게 있는 것
최근 인천공항에서 머무는 노숙인을 혐오적인 시선으로 다룬 보도가 홈리스 인권단체와 반빈곤 활동단체들의 공분을 샀다. 그 보도는 인천공항의 세계적 위상을 우선 강조하고, 그곳에 머무는 노숙인들을 그 위상을 모욕하고 침해하는 ‘불쾌하고 더러운’ 존재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합의도 없이 카메라의 혐오적 시선에 포획된 이들에게 ‘없는 것’은 자신의 일상적 동작을 자연스레 유도하는 사물이나 도구들, 건축학적 장치들의 ‘둘레세계’이다. 반면 너무 과도하게 ‘있는 것’은 타자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적대적인 건축학적˙상업적 공간 디자인과 장치다.
무엇보다 홈리스들이 그러한 세계에서 물러나 자기 안으로 오롯이 되돌아갈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이처럼 살 만하지 않은 곳에 머물면서, 이들은 어떻게든 최소한의 ‘살 만함’을 만들어내며 오늘, 그리고 또 다른 오늘을 버티고 있다. 선정적인 언론 보도는 살 만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마치 ‘내’가 어디에 머무는가, 사는가가 오로지 ‘나’의 책임과 권한 안에 있다는 듯이 말이다.
‘왜 술 취한 상태로 공공장소에 있느냐’라는 말
고인이 된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실직노숙자〉(1998)와 〈거리에서〉(2007)를 다시 본다. 〈거리에서〉의 첫 장면에서 한 남자는 카메라와 감독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 노숙인을 모른다. 그들은 우리가 밥보다 술을 먼저 생각한다고, 달라는 건 술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너는 올바른 얘기를 전해야 한다.”
IMF 외환위기 시기, 뉴스에서는 “금융 시장이 불안에 휩싸이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흔했다. 사람이 아니라 시장이 불안에 휩싸인다. 이런 화법 속에서 사람은 불안에 휩싸일 자격도 없이 내몰리고, 무너지고, 쓰러진다. 내몰린 그 사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금융 시장의 파열음일 뿐이다.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과 〈거리에서〉는 이 금융(중심)주의가 생산하는 전도(顚倒)를 바로잡으려 한다. 노숙인이 ‘된’ 사람 이야기를, ‘나’라는 감각과 경계를 집요하게 파괴하는 그 ‘됨’의 가혹함을 전하려 한다. 대부분 식당이나 일용직 건설 노동처럼 식사와 일자리가 제공되는 일을 하던 사람들, 의지할 일가친척이 없는 빈곤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노숙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해 상상도, 학습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노숙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불안도 고통도 충격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들은 밥보다 술을 먼저 생각한 게 아니라, 술이 없으면 밥을 넘기지 못하는 아노미의 상태에 빠졌다. 이들에게 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주’와 담배는 거리에서 살기 위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 멈춰버린 시간을 뚫고 나가기 위한 필수 동행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뭐라도 하지 않느냐’, ‘왜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지 않느냐’, ‘왜 자활을 거부하냐’, ‘왜 술 취한 상태로 공공장소에 있느냐’는 질문을 연발하게 된다. 맥락과 정황을 ‘몰라서’ 하는 말들이다.
노골적 비난이든 안타까움의 표현이든, 이 말들은 근본적으로 노숙인의 현 상태를 노숙인 스스로 선택한 의지적 행위의 결과로 간주한다. 고통받는 이에게서 시민인 내게로 오는 돌봄 책임은 은근슬쩍 지워지고, 책임은 모조리 고통받는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개인을 의지의 소유자로 여기고, 행위를 그 의지에 귀속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의 처음과 끝을 가진 개인일 수 없다. 사람은 우연과 필연을 넘나드는 연루 속에서 형성되고 변형되며, 또 다른 관계 속에서 다시 형성된다. 어떻게 나는 살게 되었는지 무너졌는지, 어떤 장소와 사람이 나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했는지, 그리고 내가 받은 것을 어디로 되돌려주게 되었는지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삶은 단독자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협동이 일어나는 장의 공동체적 의지로 형성된다.
‘2020 홈리스 추모제’에서 서울역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홈리스의 생존 & 공존’ 전시물. 한 홈리스 여성의 말이 적혀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이라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
단체 〈홈리스행동〉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에서 1년 조금 넘게 함께 해온 나는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야학이라는 합의된 공동체 안에서는 홈리스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성’의 직조 가능성을 믿는 교사와 활동가들이 적절한 관계 형태를 시도하며 ‘우리’의 복수적 정체성을 가다듬는다. 즉각적으로 확인하거나 체감할 수 없는 느린 학습의 과정이다.
이곳을 드나들며, 자본 중심 사회가 빼앗으려 한 연결된, 살 만한 삶을 다른 방식으로 형성하려 시도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면면은 조금씩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드러난다.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이 알려는 욕망보다 중요한 건, 가능한 한 올바르게 접촉하고 가능한 한 부드럽게 서로 스미는 것이다.
현실적 필요와 예술적 욕구, 사회적 관심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로 교실에서 만나고, 함께 밥 먹고, 산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모꼬지나 소풍을 다녀온다. 당연히 사회적·정치적 의제가 공동 대응을 요청할 때마다 빛바랜 보라색 깃발을 높이 들고 거리로 나가는 발걸음도 빼놓을 수 없다.
즐거움으로 치자면 명절 때 모여 음식 만드는 일이 제일이다. 종일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으며,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른 이가 만든 전을 두고 가차 없이 품평회를 한다. 음식이 담긴 종이봉지가 나란히 줄지어 늘어날 때, 활동가들이 그 명절선물을 들고 다른 지역 홈리스들을 향해 출발할 때, 명절 이후 며칠을 느긋하게 그 음식 덕을 볼 때, 그때의 뿌듯함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협동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그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 그 공동체가 반빈곤, 반자본주의, 반차별이라는 큰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 의제를 하루하루의 작은 반복을 통해서, 모여든 몸들로 구현하고 또 계속 제기한다는 게 소중하다. 매번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휘발되지 않고 쌓이는 몸들의 경험이다. 이 경험이야말로 너무나 거대해진 자본의 권력 아래 홀로 무기력하게 시드는 개인들의 실존적 한계가 확장되는 장소성이고 시간성이다.
한 우정의 역사 - 서로에게 집이 되어준 그와 ‘그 사람’
생활과 활동이 돌봄의 큰 원 안에서 겹치며 상호 지지하는 이 공동체가 하는 일 중 하나로, 사망한 홈리스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으로 남기는 사별자 인터뷰가 있다. 작년부터 이 일에 참여해 온 나는 올해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쪽방에서 20여 년 살던 승호(가명) 님이 사망하고 나자, 그의 친구이며 동료였던 우현(가명) 님은 승호님 방 앞에 분향소를 마련해서 그를 추모했다. 우현님은 22~23년 전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홈리스행동〉 활동가를 만나 쪽방 주민이 되었다. 이후 20여 년간 당사자 활동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넓히고 역량을 증폭시켰다.
장례식과 49재까지 다 지내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그를 만나, 고인과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는 자신의 당사자 활동의 시작과 동력에 대해, 〈홈리스행동〉 활동가에게서 받은 삶의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도 주고 싶은 ‘되갚음’의 마음 실천으로 설명했다.
“내가 거기 계속 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벌써 오래전에. 이렇게 살아있지 않겠죠.”
홈리스행동과 함께 하는 ‘명절나기’. [홈리스행동 제공]
쪽방일지언정 거리가 아닌 ‘집’으로 안내한 활동가 덕분에 자기가 이제껏 살아있다는 말을 그는 여러 번 반복했다. 다른 노숙인들도 죽지 않고 살게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기회가 되고 서로 합이 맞으면 가능한 한 더 많은 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려 했다. ‘차분한 사람 있으면 방에다 모셔야지’ 생각하던 때, 서울역에서 승호님을 만났다.
“말이 없고 얌전하더라구요. 말을 붙이기 시작했죠. 가끔 어울려 술도 마시구요. 그렇게 1, 2년 지나 그 사람을 내 옆방에 모셨습니다. [...] 마침 옆방이 비길래, 얼른 모셔왔죠.”
그와 ‘그 사람’, 우현님과 승호님은 ‘두 사람’일 때가 잦았다. 아니, 거의 늘 두 사람이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같이 주민협의회의 일을 꾸려 나갔고, 집회에 나갔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뜻이 통해 서로의 방에서, 복도에서 술잔을 나눴다. 복날이면 “복날이니까!” 잔치상을 차려 이웃을 불렀다.
처음 동자동 우현님의 옆방으로 승호님이 이사해 들어왔을 때, 우현님은 승호님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걸 도왔다. 그러나 승호님은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을 중단하고 자활 노동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나무와 여타 작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당시 그 나이 또래 서울 상경자라면 대략 그러하듯이, 그 역시 농사 경험이 있었다. 꼭 그 경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무와 작물 가꾸는 원예 일을 워낙 좋아하고 잘했다. 우현님은 승호님이 ‘놀러 오라’는 말로 청할 때마다 자주 그곳에 가서 ‘일을 도왔’다.
“일이요? 일은 정말 끝내주게 잘했죠! 그리고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용산 참사 났을 때도 그렇고 사람들이 천막 치고 농성하면 자기가 키운 작물이나 음식도 갖다주고 … 감자니 뭐니 … 그런 일을 정말 잘했어요. 이제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마음속에 생긴 거죠.”
말하는 우현님의 얼굴이 티 나지 않게 승호님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빛났다.
그렇게 쪽방에서 살며 자활로 원예 일을 한 10년쯤 신나게 하던 승호님이 어느 날 심정지를 맞았다. 우현님은 황급히 병원에 달려가 보호자로 승호님 곁을 지켰고, 다행히 승호님은 3일 후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그때,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찾아와 승호님을 집으로 데려가 돌보겠다고 했다. 우현님은 “내가 여기서 수급자 만들어서 살게 할 테니, 두고 가시라”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여기서 내 멋대로 살던 사람이잖아요? 가족들한테 가면 서로 힘들죠. 여기는 아는 사회복지사도 있고 요양보호사도 있고... 뭐,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내’가 맡아 책임진다, 그런 뜻이라기보다 여기 사람들이 있으니까...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이 말을 오래 되새김질했다. ‘내가 맡아 책임진다’가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 있으니까. 돌봄의 주체는 한 사람으로 고정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떤 관계망 안에 있는가, 혹은 어떤 연결망이 형성되는가가 중요하다. 누군가를 살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엄청난 의지나 헌신이라기보다 여기저기 느슨하게 있는 관계들의 접속이다.
우현님의 적절한 개입으로 승호님은 그의 옆방에서 다시 10여 년을 이웃으로 친구로 동료로 당사자 활동가로 살았다. 그 기간 내내 우현님은 필요할 때마다 승호님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죽기 얼마 전 승호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보호자인 그는 다른 동료 한 사람과 함께 날마다 번갈아 병원으로 찾아갔다. 필요한 걸 물었고, 혹시 남길지도 모를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대기 상태에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서 한 사람의 죽음에 모여드는 여러 사람의 몸과 시간을 만난다. 죽음은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길과 그 죽음 이후의 시간은 결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2020 홈리스 추모제’ 전시물 중에서 한 홈리스 여성의 말을 옮긴 피켓 내용. 홈리스 추모제는 거리, 쪽방, 시설, 고시원 등에서 살다가 홀로 삶을 마감한 홈리스 사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연대 행동이다. 매년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즈음 열린다. [홈리스행동 제공]
“(지난) 한 달 동안 힘들었죠. 그렇죠, 매일 소주 한 병씩 먹고 잤지 뭐. [...]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죠. 안 그러면 그 사람이 살아서 옵니까? 살아오라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잊으려고 무지하게 노력하고 ... 어젯밤에도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술 한 병 또 쫙 먹고, 계란 프라이 두 개를 딱 해다 앞에 두고, 테레비 보고. 야, 씨발 뭐가 어쩌니, 해가면서 이제 술 한잔 먹고 그러면 아무것도 잊히지는 않는 채 잠이 와요.”
‘그 사람’과 함께 마시던 술을 그는 이제 혼자 마신다. 생각은 사라지지 않아도 술을 마시면 잠을 잘 수는 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오고,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어요.”
나는 그 오만 가지 생각 중 하나만 들려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뭐 오만 잡생각이라는 게 요즘은 그런 것 같아요. 아니, 한 2년 된 건데. 저녁에 잠자리에만 누우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질 수 있을까’ 이런 게 ... 한 2년 전부터 이제 그런 현상이 왔어요. 그런 데다가 또 저 새끼 죽고 나서 꿈에 나타나지 말라고 ... 자꾸 나타나니까. ‘야, 좀 제발, 좀 가!’ 그래서 막 새벽에도 일어나게 되고, 그러면 또 잠을 못 자니까 냉장고 뒤져서 술 있으면 한 잔 얼른 탁 먹고 또 자고, 지금 그러고 있죠.”
우현님보다 한 살 위이고, 역시 혼자 살면서 아픈 데가 많은 나는 그가 들려주는 오만 가지 생각에 즉각 공감했다. 나도 그렇게 잠들고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늘고 있는 터다. 그래서인지 우현님이 들려주는 ‘그 사람’ 승호님과의 우정 이야기가 한 문장 한 문장 애틋하고 진하다.
혼자 사는 게 걱정이 아니라 혼자 죽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인 이 시대에, 누구에게 나를 돌봐달라는 청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이 돌봄 위기의 시대에, 두 사람의 관계는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서로에게 폐를 끼치고, 부담이 되고, 보호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살아지니까 산다는 말이 있듯이, 돌봐지니까 돌본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은 의지나 선택, 책임의 문제로 경계 지어 설명할 때 오히려 각 주체의 행위성을 불모의 무능력으로 경직시킨다. 어디에서 사는가를 포함해, 자기가 누구인지 늘 점검하면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선택하고, 그 책임도 오롯이 자기가 진다는 저 독립적인 ‘정상적’ 시민이야말로 얼마나 미성숙한가. 그로써 바짝 졸아붙어 단지 하나의 딱딱한 고치가 되어버리는 자율적 삶이란 얼마나 불모의 단절인가.
얽히고 섞이고 분해되고, 그래서 너, 나, 우리, 그들이라는 윤곽이 변경되고 재조정되는, 살아지고 돌봐지는 관계가, 적대적인 도시환경과 삶의 모델 ‘밖’에서, ‘밀려난’ 장소에서 돋아나고 자란다는 게 그냥 우연은 아닐 거다. 홈리스/노숙인의 삶에 관해 우리가 ‘모르는 것’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이런 부담 없이 폐 끼치는 하루하루가 아닐까.
승호님의 존재했음, 있었음은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홈리스 공동체 이야기를 하는 우현님의 몸과 목소리 속에서 확연해진다. 서로에게 집이 되어준 두 사람의 우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는 구약성서의 구절을 지극히 세속적인 울림 속에서 다시 듣는다.
헤어지기 전, 우현님이 한 말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년에 좀 맘이 맞는 친구들하고 그 사람 고향에 한 번 갔다 오려고 해요. 그 사람이 있는 곳에. 한 번, 내년에 한 번. 그걸로 이제 끝내려고요. 이곳의 다른 사람이 죽으면요? 그때도 그렇게 해야죠.”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늙어가고 있다. 교차성의 관점에서 노년기 말년성에 대해 질문하고 감각하고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쓰고 있다. ‘죽음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사유는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이번 연재에서 죽음에 대한 사유는 명사적 죽음의 보편성과 동사적 죽음 경험의 특이성을 교차적으로 탐색하면서, 삶의 여러 국면을 고유한 문장으로 새롭게 낯설게 만나게 하리라 기대한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단독 저서와 『돌봄의 얼굴』, 『돌봄의 상상력』, 『돌봄과 인권』,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