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의 변호사의 시선] 안산 주점 CCTV가 드러낸 수사 허점, 경찰은 누가 견제하나

지난 8월 1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으나 경찰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받은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채단비씨의 사건 전후 CCTV 영상을 공개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성폭행 피해를 신고했던 아르바이트생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 후 자살한 사건의 주 폐쇄회로(CC)TV 영상이 방송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유가족이 피해자의 얼굴과 실명, 범죄 피해 전후가 담긴 영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도를 접하며 '오죽하면'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유가족이 공유한 소식에 큰 공분이 일었다. CCTV 영상은 내게도 충격이 컸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 지점과 조금 달랐다.
지난 3월 말 어느 기자가 이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연초부터 검찰의 보완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가 계속 화두가 됐고, 이 사건을 경찰의 잘못된 수사나 판단 사례로 볼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에게 전해 듣는 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찰의 불송치 이유서라도 있는지 물었고, 그 과정에서 불송치 이유서를 입수해 읽었다.
불송치 이유 중 '증거 판단 및 관련 판례' 항목에는 CCTV 영상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거기에는 "새벽 늦게 영업 종료 후 직원 회식이 시작되는 모습이 확인되고, 회식 자리가 끝나는 시간까지 피의자와 피해자가 끌어안고 서로 껴안고 볼에 뽀뽀하는 모습 등이 여러 차례 확인되고, 가게에 단둘이 남게 된 후 성관계가 일어나는 시점까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성관계가 있은 후 약 30여 분 후 피해자가 피의자와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화 후 가게 밖을 나가는 모습이 확인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피해자가 "성관계가 일어난 시간을 다르게 진술하고, 성관계 직후 피의자를 밀쳐내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CCTV 영상과 다르게 진술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이 자문을 의뢰받을 당시 CCTV 영상은 제공되지 않았다. 그때는 피해자의 나이도 알지 못했다.
준강간죄는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와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요건으로 성립하는 범죄다. 많은 사람이 이른바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블랙아웃, 즉 알코올로 인한 일시적 기억상실 상태를 만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사법에서 요구하는 항거불능 상태는 외형상 나타나는 만취의 모습이다. 가령 비틀거리거나, 넘어지거나,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거나, 부축을 받아 걷는 상태 같은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면 기억도 온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준강간 피해자들은 대개 범죄 피해 당시뿐 아니라 그 전후 사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준강간이 벌어진 시간이나 장소, 상황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만취한 모두의 기억이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CCTV 영상 등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지 않아 믿기 어렵다고 하고, 또 어떤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기억을 정확하게 하고 있어 만취했다고 믿기 어렵다고 한다.
단순히 이런 문구만으로 준강간을 증거불충분으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판단이 타당하려면 수사 주체에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불송치 이유에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된 내용들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범죄 피해 당시 만취 상태였음을 이해한 상태에서 문답이 진행됐고, 이후 그 진술도 그에 맞게 해석됐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산경찰서의 불송치 이유서를 읽고 잘잘못에 대한 입장을 말하기는 고민스러웠다. 의문점이나 아쉬움은 많았지만 그 수사와 판단이 잘못됐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불송치 이유서가 위 두 가지 전제를 모두 갖추고 있다면 경찰의 판단이 잘못됐다고만 할 수 없는데, 실제로 그 두 가지 전제를 갖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CCTV 영상을 볼 수 있는지 물었으나 당시 자문을 구한 기자도 영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제한적이었다.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마신 음주량이나 마지막 음주 시점, 피해자의 채혈 시점 등을 확인했는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업무상 위력 관계에 있었는데 피해자가 혼자 남게 된 경위나 당시 성관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불송치 이유서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만큼, 이유서에 모두 적지는 않았더라도 실제 수사와 검토가 이뤄졌는지 경찰에 확인해 보라는 정도의 의견을 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리고 거의 5개월이 지나 그때 보지 못했던 범죄 발생 당시 CCTV 영상을 보게 됐다. 공개된 CCTV 영상에서 확인되는 내용은 사건의 불송치 이유서에 기재된 내용과 달랐다. 정확히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 존재했다. 즉 이 사건의 불송치 이유서는 불송치 판단이 타당하기 위한 기본적인 두 가지 전제가 모두 허물어진 상태였다.
경찰이 늘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사보고서와 불송치 이유서 등에 중요한 증거의 존재나 내용을 전혀 다르게 기재하거나 누락하는 것은 의무와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비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사건에서 불송치 이유서의 기재와 실제 CCTV 영상 사이의 차이는 범죄 성립 요건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것을 놓치거나 다르게 기재한 것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다. 담당 수사관의 고의가 아니었다면, 범죄가 갖는 특성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중과실이다.
고소한 피해자는 불기소 이유서 외의 자료를 자신이 제출한 것 말고는 거의 볼 수 없다. 만약 피해자가 죽지 않았고 사건이 기소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나 가족들이 그 CCTV 영상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송치 이유에 적힌 내용과 달리 범죄 성립 요건에 부합하는 장면을 직접 확인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담당 수사관의 수사를, 내부 결재까지 거친 판단을 믿을 수 없게 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기록이 사실대로 기재됐다는 전제에서 본다. 그렇다면 이의신청을 받은 검사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재정신청된 사건을 보는 판사는 다를까.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그래서 이 사건은 현재 형사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왜 사법기관의 권한을 어디에 몰아줄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견제와 균형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제주도의 경찰 실종신고 은폐 사건의 본질도 이 사건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이런 불안한 시절, 변호사를 찾아온 피해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경찰을 너무 믿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자기 사건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말뿐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가장 아픈 지점은 이 문제가 국민이 다 함께 목격하는 하나의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국민 모두가 처한 환경이라는 점이다. 예외 없이.
이은의 변호사. ⓒ북스코프 출판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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