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박지현이 원주로 간 이유

책방 겸 카페 〈더멀리〉를 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인터뷰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더멀리〉는 책방 겸 카페다. 이곳을 책임지는 사장이 된 박지현 씨의 모습. 인스타그램 @the_merly_books ⓒ일다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를 알리며 한국 사회에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낸 전 추적단불꽃 활동가. 그리고 2022년 3월부터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민주당 쇄신을 외쳤던 정치인. 박지현 씨는 이제 거기에 ‘여성 청년 자영업자’라는 타이틀까지 더하게 됐다. 책방이자 카페인 〈더멀리〉를 열었기 때문이다.
활동가, 정치인으로서 당찼던 지난 활동들을 봐왔기에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책방을 연 것 또한 단순한 선택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자영업자의 삶이 특히 고달픈 요즘, 박지현 씨는 왜 또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더멀리〉의 가오픈 기간이 끝나고 정식 오픈을 앞둔 8월의 어느 날, 원주를 방문해 책방 겸 카페의 사장이 된 박지현 씨를 만났다.
더멀리 책방이자 카페 사장입니다. 이전에는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알리는 활동가로 일하다가 정치를 경험했어요. 사실 지금 대학원생의 신분이기도 한데요, 논문만 쓰면 졸업이에요.
공공정책학을 전공했어요. 논문은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된 건데, 아직 자세히 밝히기 어려워요. 다만 선행 연구가 없는 분야라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멀리 오픈 전에 논문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아직 못 해서 큰일이에요(웃음).
박지현 씨는 여러 정체성으로 이야기되는 분이기도 한데,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면요?
일단, 책임의 무거움과 삶의 애환을 몸소 배우는 초보 사장이요. 더멀리를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영업자의 세계에 합류하게 됐잖아요. 가게 오픈 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사장님의 고민과 애환을 듣긴 했어요. 근데 가오픈 기간에 직접 운영해 보니 ‘책임감이라는 게 정말 무겁구나’ 몸소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주변 자영업자들이 실제로 세금을 내는 때가 오면 또 많이 다를 거라고 하던데, 이제 하나하나 경험하게 되겠죠.
박지현 씨는 러닝크루인 ‘다시 뛰는 여성정치’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주로 이주한 후에도 최대한 시간을 내 참여하려 한다고 밝혔다. (제공: 박지현)
그리고 여성청년이라는 정체성도 빼놓을 수 없어요. 어떤 일이나 활동을 계획할 때 늘 ‘여성으로서’, 그리고 ‘청년으로서’ 본질적인 고민을 던지게 되거든요. 주변의 또래 여성과 청년들이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겪는 수많은 사건들과 그들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 현실적인 문제 의식을 밀접하게 느끼고 있고요. 이를 개인의 극복 과제로 남겨두지 않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요.
마지막으론 연대자 정체성이요. 활동가와 정치의 길에 처음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디지털 성범죄인 ‘n번방 사건’을 목격하면서였어요. 그 문제를 추적하고 공론화하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연대가 없었더라면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자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한국 기득권 세력의 파묘 정치, 청년 정치인이 설 곳 없어
활동가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지난 활동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요. 그 활동들을 짧게 한두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추적단불꽃 시절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던 시간”인 것 같아요. 디지털 성범죄를 세상에 알리며,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치열하게 달렸던 시간으로 기억해요.
정치인으로의 경험은 한 문장으론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품고 들어선 정치 공간이었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여의도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하는 이상한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정치 최전선에서 청년이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리더로서 수많은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한 시간이었어요. 매일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 짊어져야 했던 정치인으로서 책임의 무게를 아주 묵직하게 배웠죠.
지금 한국 정치는 참 실망스럽죠. 최근 미국에선 청년 정치인들이 등장해 기성 정치인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은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비어있던 공간을 책방 겸 카페로 만들었다. 더멀리 인스타그램 @the_merly_books (제공: 박지현)
미국 정치에서 지금 DSA(민주사회주의 정치인 조직,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등이 활약하고 있다)가 성과를 보이는 건, 버니 샌더스(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에 반해, 한국의 제도권 정치 조직 안에서는 청년 정치인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밀어주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보지 못했어요. 시민사회단체에선 있었지만, 정치권에선 정말 없었어요. 존경할 만한 이들은 이미 정치권을 떠났고, 남은 기득권은 미래에 대한 대안이나 아젠다 없이 서로를 파묘하는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죠.
정당 정치를 경험하면서 당 내부의 갈등이나 한계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내가 만들고 싶은 사회와 정치는 이런 게 아니다’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앞으로도 꿋꿋하게 정치를 해서 동료들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정치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신데, 서울이 아니라 고향인 원주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정치의 한복판을 지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너무나 치열하게 달렸던 시간이 번아웃을 불러왔어요. 치열하기만 했던 서울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내 삶의 뿌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이 간절히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에 살았던 6년 동안 스토킹을 당하고 집 주소가 노출되는 피해를 겪으며, 제 의도와 상관없이 무려 여섯 번이나 강제로 이사를 다녀야 했거든요. 주거 불안정도 있었고, 마지막 살던 집이 해가 안 드는 집이어서, ‘제발 해가 드는 집에 살고 싶다’는 절박함도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의 높은 주거 비용 속에서 해가 드는 집을 구할 여유가 없었고... 경제적인 한계에 부딪힌 부분도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또 정치 활동을 하며 수도권 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해 왔으면서, 정작 ‘나는 서울에 계속 머무르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활동하며 만난 친구, 동료들이 서울에 있어서 원주로 오는 게 불안하기도 했지만, 서울에서는 늘 겉도는 이방인 같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지역의 여성, 청년, 풀뿌리 조직, 연대자들의 거점으로
SNS를 통해 〈더멀리〉 준비 소식을 보고 약간 놀라면서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됐어요. 활동가, 정치인이니까 ‘공간’,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알 거라 생각했거든요.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날 찍은 셀카. (제공: 박지현)
맞아요. 비대위원장을 경험하고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진짜 목소리에 늘 갈급함이 있었어요. 대중과 격의 없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책방’이 가장 좋은 매개체라고 판단했죠.
그리고 서울에 살 때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거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집 앞에 작고 소박한 동네 책방이 몇 군데 있었거든요. 거길 찾아다니면서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이 저에게는 유일한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언젠가 이런 공간을 직접 꾸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나 서울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원주로 오면서 비로소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 거죠. 마침 지금의 공간을 발견하게 됐고,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가오픈을 통해 6일 동안 직접 운영해 보셨는데, 어땠나요?
사실 빵도 네 가지를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오픈 전날 너무 힘들어서 울었어요. 욕심내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냥 빵 종류는 소금빵 하나만 만들기로 했어요. 그렇게 준비하고 가오픈하는 동안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더라고요. 정말 정신 없었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정식 오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손님도 많이 와주셔서 힘이 됐어요.
원주에서 〈더멀리〉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이 공간이 사유와 치유를 위한 쉼터가 됐음 좋겠어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등이 잠식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이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사유하는 시간’을 되찾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차분히 책을 읽고, 고민하고,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는 곳이요.
또 다정한 연대의 거점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찾아와 세상의 고단함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안전함과 다정한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공간. 단순히 음료와 책을 파는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짜 삶과 이야기가 모여 따뜻하게 연결되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 예정이에요.
〈더멀리〉엔 청소년들이 가져갈 수 있는 책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어른’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일다
지역 여성 청년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나 영화 모임, 평소 쉽게 나누기 어려웠던 기후 환경, 노동, 지역, 정치, 사회 문제 등을 책을 매개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하고자 하고요. 이를 통해서 청년들이 정치를 조금 더 가깝고 가볍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활동을 하는 풀뿌리 조직의 거점 역할도 하고 싶고요.
소소하지만 미래 세대를 향한 연대의 일환으로, 12세부터 19세 청소년들이 책을 한 권씩 조건 없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요. ‘어른’ 세대가 후원을 하면 청소년들이 책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청소년들의 성장을 돕고 지지하는 연결고리가 됐으면 해요.
‘더멀리’라는 이름엔 “책을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너머 더 멀리 나아가자”는 뜻이 담겼고요. “더 멀리 가되 곁에 있는 평범한 이웃들과 기꺼이 손을 맞잡고 함께 한 걸음씩 걸어가자”는 상상의 연대체로서 목표가 담겨 있기도 해요. 혼자 빨리 가기보다 기꺼이 동행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박지현 씨의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 목표는 이 공간을 통해 풀뿌리 조직을 구축하는 거예요. 기존의 제도권 정치가 미처 닿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는 대안적 정치를 지역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여러 모임을 해보려고 하고요. 9월부터는 정기적으로 매주 아침을 여는 독서 모임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청년들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들을 모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하고요. 무엇보다 현실 자영업자로서 〈더멀리〉를 무탈하게 운영해 나가는 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죠.
장기적 목표는,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권 정치에 다시 입성하는 거예요. 저에게 정치는 단순히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에요. 활동가 시절과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늘 가슴 깊이 막중한 부채감을 느껴왔던 디지털 성범죄와 여성폭력 문제 등 제도권 안에서 아직 매듭짓지 못한 과제들을 ‘힘’을 가지고 끝까지 해결하고 싶어요.
비대위원장 시절, ‘힘들더라도 탈당하지 말고 계속 정치해 달라’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신 시민들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최소한 10년은 버텨보겠다”고 약속도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비록 당내에서 소외당하고 있을지라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꿋꿋하게 버틸 거예요. 사람들도 모으고 세력도 넓혀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