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시간 알려주는 '앙부일구' vs 원자핵으로 시간 재는 '핵시계'

햇빛과 그림자로 시간을 읽는 조선시대 앙부일구에서 토륨-229 원자핵의 에너지 변화를 이용하는 핵시계로 이어진 시간 측정 기술의 발전을 표현한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확인했을까요? 조선 초기에는 오늘날 기상청과 비슷한 역할을 한 서운관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쳤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짐작했습니다.
조선의 네 번째 왕 세종은 시계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고 일상 속 불편도 줄어듭니다. 1434년 세종은 조선의 과학자들과 해시계 ‘앙부일구’를 만들었습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입니다. 받침대 위에는 시판이라는 그릇이 놓여 있는데 시판은 반구 모양입니다. 시판 안쪽에는 시간선과 절기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간선은 시간을, 절기선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 변화인 절기를 나타냅니다.
시판 가운데에는 영침이라는 뾰족한 금속 막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영침에 햇빛이 닿으면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의 방향을 읽으면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선은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12개의 선입니다. 그중 시판 위쪽에 그어진 7개의 선은 해가 뜨는 묘시부터 해가 지는 유시까지 나타냅니다. 밤에는 햇빛이 없어 그림자가 안 생깁니다. 그래서 해가 떠 있는 시간만 읽을 수 있습니다. 각 시간선 사이는 2시간 간격이고 그 사이는 다시 8칸으로 나뉘어 15분 단위까지 시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절기선은 시판에 가로로 그려진 13개의 선입니다. 각 선 양 끝에는 절기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태양의 높이는 절기마다 다릅니다. 영침의 그림자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6월 21일경인 절기 ‘하지’에는 태양이 가장 높이 떠 그림자가 가장 짧습니다. 영침의 그림자는 맨 아래쪽 절기선을 따라 움직입니다. 반대로 12월 22일경인 절기 ‘동지’엔 태양이 가장 낮게 떠서 그림자가 깁니다. 동짓날 영침의 그림자는 맨 위쪽 절기선을 가리킵니다.
앙부일구는 조선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덕분에 백성들은 앙부일구를 보고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관청에서 일을 볼 때도 시간을 맞추기 쉬웠습니다. 오늘날에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토륨-229가 들어 있는 불화칼슘 결정에 자외선 레이저를 쏘아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 변화를 유도하는 핵시계 실험을 표현한 이미지. 생성형 AI 제작
최근 원자핵으로 시간을 재는 ‘핵시계’가 세계 최초로 작동했습니다. 6월 2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중국과 유럽 연구팀이 각각 토륨-229 원자핵으로 시간을 재는 핵시계를 만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리가 휴대전화나 인터넷에서 보는 시간은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원자시계는 원자의 전자가 에너지 상태를 바꿀 때 나타나는 매우 일정한 진동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입니다. 원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데 그 안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돕니다.
과학자들은 레이저를 쏘아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바꿉니다. 이때 나타나는 빛의 진동수는 매우 일정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진동수를 세어 시간을 측정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원자시계는 세슘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세슘의 전자가 에너지 상태를 바꿀 때 흡수하거나 내보내는 빛이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로 정의했습니다.
원자시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자는 가볍고 원자 바깥쪽에서 움직여서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자기장이나 온도 변화에 쉽게 흔들립니다. 과학자들은 원자시계를 진공 상태에 두거나 아주 낮은 온도로 냉각해서 바깥 환경의 영향을 줄입니다.
원자시계와 달리 핵시계는 원자핵의 에너지 변화를 이용합니다. 원자핵은 전자보다 훨씬 무겁고 원자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는 자기장이나 온도 변화에 덜 흔들립니다.
핵시계는 토륨-229로 만들어졌습니다. 토륨-229는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가 90개, 중성자가 139개인 원자입니다. 대부분의 원자는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바꾸려면 매우 강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반면 토륨-229는 약한 자외선 레이저만으로도 상태가 쉽게 변합니다.
두 연구팀이 핵시계를 만든 원리는 비슷합니다. 토륨-229를 불화칼슘 결정에 넣고 자외선 레이저를 쐈습니다. 토륨-229 원자핵이 레이저 빛을 흡수하면 에너지 상태가 변합니다. 연구팀은 레이저를 조절해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 변화를 매우 일정한 주기로 반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핵시계의 오차는 300만 년에 1초 수준입니다. 가장 정밀한 원자시계가 400억 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으니 핵시계는 아직 정밀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래도 핵시계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중국 연구팀은 핵시계의 장점을 활용하면 앞으로 복잡한 장치를 줄인 휴대하기 쉬운 핵시계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유럽 연구팀은 핵시계가 암흑물질 같은 새로운 물리 현상을 탐지하는 센서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편집부와함께 미리보는통합과학] 고양이의 마지막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