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들은 불법체류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아동들은 불법체류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이주민센터 친구에서는 2024년 미등록 이주 아동 구제 대책을 통한 체류자격 신청을 위해 당사자 아동과 동행하였다. 해당 아동은 미등록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10년 이상을 한국에서 성장한 아동이었다.
최근 SNS에서 짧은 TV 토론 프로그램 영상을 봤다. 주제는 불법체류자 자녀에 대한 교육지원을 제한해야 하는가였다. 영상 속의 두 토론자는 자극적이고 빠른 속도로 자신의 주장을 주고받았다. 교육지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측의 패널은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교육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불법체류를 해도 된다는 공공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토론에는 정작 당사자인 아동은 없었다. 미등록 체류 아동에게는 생존과 정체성과 관련된 삶의 절박한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논리 게임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불법체류자 자녀라는 단어는 이상하다. 그 말은 아동을 아동의 존재가 아닌 부모의 체류자격으로 설명하고 정의 내린다.
아동은 자신의 미등록 체류 상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다. 아동은 그저 이 사회에 그냥 살게 된 존재들일 뿐이다. 아동들은 자기 체류자격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 어느 나라에서 살지, 부모의 체류자격이 언제 만료될지, 가족이 어떤 사정을 겪게 될지 아동이 스스로 결정한 것은 전혀 없다.
아동들은 불안과 위험 속에서 산다. 부모가 단속될까 봐 걱정하고, 병원비 때문에 아픈 걸 참기도 하고, 어떤 서류를 냈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겁낸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몰라서 학교에서도 조심한다. 친구들에게 자기 상황을 숨기는 아이들도 많다.
미등록 체류 아동에 대한 논의에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주장이 따라온다. 불법체류를 한 부모에게 국가가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동의 교육은 부모에게 주는 보상이 아니다. 아동이 학교에 다니거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국가가 부모의 체류 위반을 눈감아주는 행위가 아니다.
아동은 국가의 인구정책이나 출입국정책을 계산하면서 태어난 존재들이 아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동들은 거창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싶고, 졸업하면 뭔가 준비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아동은 오늘도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시간을 보내며 자란다. 행정은 몇 년 단위로 대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아동은 그 사이에도 계속 성장한다. 열 살의 불안은 열다섯 살의 침묵이 되고, 스무 살의 막막함으로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아동에게는 자기 존재를 의심받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 내일도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