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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영재교육 설명회나 상담실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영재교육 설명회나 상담실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영화 <샤인>(1996)을 보며 강남의 교실을 떠올리다

스콧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1996)을 다시 보다가 어린 데이비드 헬프갓(제프리 러쉬 분)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 오래 멈췄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손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아이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나는 사교육 현장에서 15년쯤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동안 상담실에서 꽤 많은 부모를 만났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는 부모보다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부모를 만날 일이 훨씬 많았다. 어느 수업을 더 들어야 하는지, 지금 시작하면 늦지 않는지, 몇 학년 과정을 미리 끝내야 하는지 묻는다. 아이가 시험에서 95점을 받아오면 틀린 5점부터 확인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런 부모들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상담을 오래 해보면 그 열정의 출발점이 의외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서울의 특정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일종의 시간 싸움이었다. 남보다 잘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남보다 빨리 시작해야 한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지고, 중학생이 고등학교 과정을 시작하는 시기는 계속 앞당겨진다. 거기에 '영재'라는 말이 붙으면 속도에는 재능이라는 명분까지 생긴다.

아이의 오지 않은 미래까지 보는 부모들

영재교육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에게는 그 능력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의 영재교육 역시 별도의 교육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다른 장면이다. 학원과 교육 프로그램의 홍보물에서 '영재', '상위 1%', '창의융합', '글로벌', '미래 인재' 같은 단어가 아이의 특성을 설명하는 말에서 부모가 구매해야 할 미래를 설명하는 말로 바뀌는 순간이다.

일부 국제적 교육과정을 표방하는 학교나 사설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언어를 쉽게 만난다. 중요한 것은 실제 교육과정의 이름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부모가 자기 아이의 현재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상담실에서 나는 그런 미래를 수도 없이 들었다.

"이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조금만 잡아주면 충분히 올라갈 아이예요."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얘는 가능성이 있죠?"

가끔은 아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부모보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도 끼어들지 않는다. 책상 아래에서 손가락을 만지거나 운동화 끝을 내려다본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대신 대답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모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이는 그 가능성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샤인>의 아버지 피터도 아들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다.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음악을 아들에게 주고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린다. 그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아이인지 반복해서 말한다. 그 말에는 거짓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피터는 실제로 아들을 사랑한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음악을 빼앗겼던 사람이기에 아들에게 만큼은 음악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샤인>은 불편하다. 나쁜 아버지가 아이를 망치는 이야기였다면 우리는 피터를 비난하고 극장을 나오면 된다. 그러기에는 그의 마음 가운데 일부가 너무 익숙하다.

내가 못 가본 곳까지 갔으면 좋겠다. 나보다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재능을 썩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담실에서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돈과 시간을 쓰기 시작하면 그 마음에는 어느 순간 다른 감정이 섞인다. 유명하다는 수업을 찾아다니고 주말을 반납하고 몇 년 동안 아이의 시간표를 관리했다.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때 부모에게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아깝다는 말의 주어가 누구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아이에게 아까운 것인지,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운 것인지, 부모가 아이와 함께 달려온 시간이 아까운 것인지. 대개는 그 셋이 뒤섞여 있어서 당사자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샤인>에서 피터가 넘지 못하는 경계도 거기에 있다. 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아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어느 순간 한 덩어리가 된다.

사교육 현장에서는 아이의 인지적 능력을 앞당기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고 더 높은 수준의 글을 읽히며 몇 년 뒤 배울 내용을 먼저 가르친다. 실제로 그것을 즐기고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15년 동안 아이들을 보면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아이의 마음에는 선행학습이 없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풀어도 속상할 때는 초등학생처럼 속상하다. 영어로 자기 의견을 유창하게 발표해도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열두 살의 방법으로 아파한다. 어른과 토론할 만큼 영리한 아이도 부모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날 밤 잠들지 못할 수 있다.

문제 풀이의 속도와 마음이 자라는 속도는 같지 않다. 오히려 영리한 아이 가운데에는 부모의 기대를 너무 빨리 알아차리는 아이가 있었다.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어떤 성적을 받아야 집의 분위기가 좋아지는지도 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배운다. 그 아이들은 흔히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불렸다. 나는 그 표현을 예전만큼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2025년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5.7%였다. 초등학생은 84.4%였다. 아이 열 명 가운데 여덟 명 이상이 사교육에 참여한 셈이다. 사교육비 총액은 같은 해 27조5천억 원이었다. 숫자가 모든 가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강남의 한 교실과 지방의 작은 학원도 같은 '사교육 참여' 한 건으로 잡힌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의 학교 밖 시간을 교육으로 조직하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예외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은 보여준다.

여기에 '영재'라는 말이 붙으면 부모는 더 불안해진다. 혹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지금 시작하지 않아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다른 아이들은 이미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늦으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교육은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는 일에서 아이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찾아내는 일로 조금씩 변한다.

<샤인>에서 어린 데이비드가 무서운 이유는 그가 실패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일찍 잘하기 때문이다. 잘하니까 더 어려운 곡이 온다. 해내면 다음 목표가 생긴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면 기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진다. 재능은 자유를 넓혀주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그 아이가 계속 증명해야 할 이유가 된다.

부모가 돈을 많이 썼어도 그만둘 수 있는 자유

나는 상담을 하면서 성적이 떨어진 아이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가 더 걱정스러웠다. 한때는 수학을 좋아했다는데 수학 이야기를 꺼내면 입을 닫았다. 책을 좋아했던 아이가 독서 프로그램을 몇 년 거친 뒤에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책 외에는 읽지 않았다. 어릴 때 그림을 좋아했다는 아이가 미술대회와 포트폴리오 이야기가 시작된 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각각 다르다. 사교육 하나로 설명할 수 없고 부모에게 모든 원인을 돌릴 수도 없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의 재능을 발견했을 때 너무 빨리 하는 일이 있다. 키우려고 한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면 더 잘하게 해주고 싶고, 더 잘하면 그것을 미래와 연결해주고 싶다. 그 마음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능을 발견한 다음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반드시 가속인지는 묻고 싶다.

어쩌면 어떤 재능에는 기다려주는 시간이 먼저 필요할 수도 있다. 싫증을 내보고, 잠시 그만두고, 다른 것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만들지 않을 자유와 부모가 돈을 많이 썼어도 그만둘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샤인>을 다시 보고 나서 오래 남은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아니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어린 데이비드의 얼굴이었다. 15년 동안 상담실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도 그 옆에 겹쳐졌다. 부모는 아이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었고, 선생은 다음 단계의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었으며, 책상 위에는 시험 결과와 시간표가 놓여 있었다.

정작 그 자리에서 가장 적게 말한 사람은 아이였다. 그래서 영재교육 설명회나 상담실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이 아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이 아이는 가고 싶어 하는가.

출처: 오마이뉴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52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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