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해녀의 몸보다 바다가 더 급격하게 변했다 [전국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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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7일 새벽, 경북 영덕 부경리 공동어장으로 원정 물질을 나간 포항 해녀들. ©김보현 제공
밤이 길다. 시골은 도시와 달라 해가 지면 곧장 캄캄한 밤이 찾아온다. 이연옥(80)은 홀로 사는 집의 적막함이 싫어 TV를 켜둔 채 잠을 청한다. 홈쇼핑 채널에선 해외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몇 해 전 다녀온 제주도가 80년 인생 중 가장 멀리 떠난 여행이다. 포항시는 지역 해녀들이 제주 해녀들과 교류하고 제주를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포항에는 현재 400여 명의 해녀가 있다. 대부분 60~80대 고령이고 신규 해녀의 진입은 거의 없다.
해녀들은 자기 마을의 공동어장에서 물질을 한다. 가끔 해녀가 없는 마을로 원정 물질을 가기도 한다. 채취한 수산물은 어촌계와 정해진 비율로 수익을 나눈다. 이연옥은 호미곶면 구만1리 공동어장을 50년 넘게 들락날락했다. 크고 작은 바위, 해조류의 위치와 계절마다 채취하는 미역·전복·보라성게를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상군 해녀는 못 되어도 바다에서 번 돈으로 가족을 먹였다. 젊을 때 배를 탄 남편들은 먼저 죽거나 병들었다. 이연옥의 남편도 4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을 때까지 우리가 가장”이라는 웃기지 않은 농을 해녀들은 자주 나눈다.
물질을 마친 다음에는 마을 공동작업장에서 수확물을 손질한다. 쪼그려 앉아 성게 속을 발라내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알맹이 무게를 재서 보낸 다음에야 해녀들은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남편이나 손주를 돌봐야 하는 이에겐 이런 짬도 사치다. 서둘러 귀가해 ‘아저씨 밥’을 차린 다음, 김춘희(80)는 홀로 있을 이연옥을 떠올린다. 나이가 들어 몸집이 작아지는지 헐거워진 오리발 안에 덧신으려고 산 양말이 마침 눈에 띈다. 좋은 핑계다 싶어 한 켤레 집어 들고 맞은편 이연옥네 집으로 향한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며 “밥 먹었는가” 묻는 말투에 묘한 억양이 섞여 있다. 제주 출신인 김춘희는 제주 4·3 당시 아버지를 잃고, 돈을 벌기 위해 물질을 배웠다. 구룡포 바다는 수심이 얕고 전복과 해삼·성게·천초가 풍부해서 해녀들이 물질하기 좋았다. 1940년대부터 제주 해녀들이 구룡포 일대로 원정 물질을 왔다. 육지 여성들은 이들에게 물질을 배웠다. 제주에서 잠시 온 해녀들 가운데 일부는 지역 남성과 결혼해 포항에 정착했다. 바다는 정직했다. 몸을 움직여 일한 만큼 돈이 됐다.
김춘희는 몸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4~5년은 더 물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바다가 먼저 망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을 앞바다에서 실시된 호미곶항 정비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올해 초, 바닷속이 급격히 변했다. 풀이 죽고 돌이 하얘졌다. 물속이 어두워지고, 어렵게 잡아 올린 성게는 속이 비어 있었다. 공사 구역 양옆에 자리한 구만1리와 대보2리 공동어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두 마을 해녀 50여 명이 작업을 멈췄다. 이들은 공사가 공동어장에 미칠 영향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사전 설명회에도 이해당사자인 자신들이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시공사인 쌍용건설과 발주처인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공동어장 피해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요구했다.
‘호미곶항 정비공사로 해녀들 생계터전 다 뺐겼다. 해수부는 마을 공동어장 피해를 당연하게 보상하라!’는 현수막 앞으로 고령의 해녀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보현 제공
이들의 마음 한편에는 ‘서운함’이 있다. 어촌계 구성원이자 가장으로서, 50년 넘게 한 직업을 이어온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마을 이장들에게 서운하고, 이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 포항시에도 서운하다. 해녀들은 ‘일터를 잃었다’라는 현수막 문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을 공유한다. 마을 어장은 이들의 생계 터전이자 평생 노동하며 관계를 맺고 삶을 이어온 공동체 공간이다. 해녀들은 오랫동안 공동어장의 자원을 스스로 관리하며 작업 질서를 만들었다. 바다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몸으로 알아채는 것도 이들이다.
쌍용건설은 피해를 입은 마을 해녀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해녀들이 서울에서 집회를 열고 포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다음의 일이다. 명목은 ‘해녀 발전기금’, 합의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합의문에 이들이 꾸려온 삶과 노동의 가치까지 담기지는 않을 테다. 시간이 흘러 마을 어장이 회복된다 해도 그때 이연옥과 김춘희가 다시 해녀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바다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기에는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